무엇을 위해 사는가
월급날 저녁,
문자 메시지에 적힌 월급액을 본다.
0,000,000원 0이 하나 더 붙지 않나 상상하며
퇴근 버스를 탄다.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장을 보고
계산대를 지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또 한 달을 버텼구나.”
그 말속엔 묘한 기분이 섞여 있다.
안도감 반, 허무함 반.
예전엔 월급으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작은 선물도 사고
내 기분을 풀어주는 소비를 하곤 했다.
지금은,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만큼
사라져 있다.
가끔은,
‘벌기 위해 사는 건가
사는 데 돈이 필요한 건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월급은 분명히 현실이고,
사는 데 꼭 필요하지만
그 돈이 ‘삶’을 채워주지는 않는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나는 가끔,
더 적은 돈을 벌더라도
더 나답게 살 수는 없을까
상상해 본다.
그 상상이
무책임한 도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숨 쉬는 하루,
그런 날을 바라는 것도
삶의 일부일 것이다.
회사 동료들과 밥을 먹으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하는 대화를 나누지만,
그 속엔 늘
‘진짜 괜찮은 건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데,
그 얼굴에 웃음이 없다면
그건 뭔가 이상한 구조 아닐까.
나는 요즘,
'잘 버는 삶'보다는
'잘 사는 삶'이 궁금해졌다.
시간을 잘 쓰고,
사람을 잘 만나고,
혼자 있는 시간에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부럽다.
그래서 월급날마다
그날을 한 줄로 적는다.
“오늘 나는 왜 일했고,
그 덕분에 어떤 하루를 살았는가.”
그게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내가 돈을 좇은 게 아니라
나의 의미를 좇았다는 기록이 될 것 같아서.
이제는
‘돈이 들어왔다’가 아니라
‘내가 오늘을 살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
누군가는 말한다.
“결국 돈이 있어야 행복도 따라오지.”
맞다.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마음을 잃으면
그 돈도 허무해진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월급이 들어왔지만
마음은 덜 무거운 날.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날.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은 게 있다.
월급날의 기쁨은,
‘돈이 얼마나 들어왔는가’가 아니라
‘내가 그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예전엔 내가 번 돈을
어디에 얼마나 ‘잘’ 쓰는지만 고민했었다.
합리적 소비, 계획적 지출, 가성비...
그런데 요즘은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 소비가 내 삶의 방향과 맞는가?”
가끔은 싸더라도 허무한 소비가 있고,
비싸더라도 오래 기억에 남는 소비가 있다.
친구와 웃으며 마신 맥주 한 잔,
아이에게 사준 작은 책 한 권,
아내와 함께한 평범한 저녁 식사.
그런 순간들이,
이번 달에도 내가 돈을 번 이유가 된다.
그걸 알게 되니까
돈이 나가는 게 무섭지 않았다.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남아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월급이 들어오고,
나는 그 돈을 통해
한 달에 한 번 내 삶을 조율하게 된다.
이게 지금의 나한테는
가장 소중한 ‘루틴’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런 질문도 해보게 됐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인가,
아니면 ‘살아가기 위한 수단’인가.”
일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그건 월급이 많든 적든
결국 손해다.
나는 이따금 멈춰 서서 생각한다.
“이 일은 나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고 있는가.”
지치게 만들고 있는가,
자존감을 깎고 있는가,
아니면 성장을 도와주고 있는가.
그 기준으로 보면,
월급의 액수는 부차적이 된다.
사실,
큰돈을 벌어도
내면이 비어 있다면
그건 계속 채워야만 하는
끝나지 않는 굶주림이다.
이제는 조금 안다.
삶은 버티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매달 버티는 월급날이 아니라,
매달 조금씩 살아지는 월급날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요즘
월급날에 맥주 한 잔을 꼭 마신다.
작은 의식처럼.
나에게 묻기 위해.
“이번 달도 수고했어?”
“다음 달엔 뭐가 바뀌면 좋겠니?”
내가 내게 던지는 질문이 쌓이면
그게 나라는 사람의 방향이 되는 것 같다.
돈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
월급으로는 인생을 살 수 없다.
다만,
그 돈으로 내 인생의 한 조각을
더 진하게 살아낼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게
돈을 버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맥주 한 잔 문장
“월급은 숫자지만,
그걸 어떻게 쓰느냐는 태도이고,
그 태도는 결국 삶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