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터에서 다시 배우는 삶의 순수
해가 조금씩 저물 무렵,
놀이터 바닥에 떨어진 아이의 웃음소리를 밟으며 걸었다.
미끄럼틀은 누군가의 작은 용기를 기다리는 언덕이었고,
시소는 함께 나눌 때만 오르내리는 균형이었으며,
그네는 손을 놓을 줄 알아야만 더 높이 날 수 있는 철학을 품고 있었다.
한쪽 벤치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그 유명한 시.
하지만 오늘따라
그 문장이 꼭 나의 아이를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어쩌면,
예전의 나를 말하는 것처럼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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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자주
‘잘하는 아이’, ‘예의 바른 아이’, ‘빠른 아이’만을 예쁘다고 여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놀이터 모퉁이에 앉아 조용히 모래를 손끝으로 만지는 아이도,
한참을 용기 내어 그네에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도,
눈빛 하나로 세상을 배워가는 중이다.
아이들은 다만,
조금씩 다른 속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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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릴 때 놀이터에서 뭐 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놀이터의 기억은 너무 흐릿했고,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잊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이 조용한 놀이터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배운다.
세상의 모든 배움은 놀이터에서 시작된다는 것.
서로 밀어주고, 기다려주고, 때론 울어도 괜찮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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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네가 조금 느려도 괜찮다.
넘어져도, 울어도, 하늘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어도 된다.
아빠는 네가 함께 있는 순간을,
그저 놀고 있는 너의 지금을 사랑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어른들도
이 놀이터 한가운데에서
조금은 더 자주 멈추고, 뛰고, 넘어지고,
다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