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남기고 싶은가, 내가 본 걸 남기고 싶은가
형은 여행을 가면
사진을 꼭 찍긴 해.
근데 예전엔 거의 대부분
셀카였어.
내가 거기에 있었단 걸 증명해야 할 것 같고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잘 다녀왔네”, “예쁘다” 같은 반응이 올 것 같고
그러지 않으면
그냥 스쳐 간 풍경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거든.
그래서
형의 사진첩은
형의 얼굴로 가득했어.
그곳이 어떤 색이었는지는 정작 흐릿하게 남고.
셀카는 명확해.
그날의 내 얼굴, 표정, 옷차림, 배경.
“나 여기 있었어.”
“이걸 봤어.”
“이만큼 누렸어.”
어떻게 보면
셀카는 존재에 대한 기록이야.
내가 이 순간을 살았다는 것.
하지만 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사진들이 자꾸 비슷해 보였어.
표정도, 각도도, 배경도
다른 장소인데도 어쩐지 같아졌어.
형이 거기에 있었던 건 맞는데,
그곳이 형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사진 속 어디에도 없었지.
그래서 요즘은
형이 찍는 사진이 좀 달라졌어.
내가 느꼈던 바람
그날의 빛
옆에 있었던 사람의 말투
그런 것들이 녹아든
조금은 흔들린, 조금은 비어 있는 사진.
셀카 대신
길게 늘어진 그림자,
빈 벤치,
햇살에 번지는 창문 같은 걸 찍어.
누구한테 보여주면
“이게 뭐야?” 할 수도 있지만,
형은 알아.
그게 형에게 어떤 기억이었는지.
형이 보기엔
셀카와 풍경은
기억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야.
나에게 중심을 두느냐
내가 바라본 세상에 중심을 두느냐
둘 다 틀리지 않아.
다만 어떤 기억이
더 오래, 더 조용히, 더 깊게 남는지는 다르지.
형은 요즘
사진을 찍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찍는 건지,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찍는 건지.”
둘 다 괜찮아.
하지만
적어도 한 장쯤은,
나만을 위한 기억으로 남겨도 좋잖아.
지금 너는
무엇을 중심에 두고
기억하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