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 vs 풍경 – 무엇을 기억하고 있니?》

나를 남기고 싶은가, 내가 본 걸 남기고 싶은가

by 라이브러리 파파

형은 여행을 가면
사진을 꼭 찍긴 해.
근데 예전엔 거의 대부분
셀카였어.

내가 거기에 있었단 걸 증명해야 할 것 같고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잘 다녀왔네”, “예쁘다” 같은 반응이 올 것 같고


그러지 않으면
그냥 스쳐 간 풍경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거든.


그래서
형의 사진첩은
형의 얼굴로 가득했어.

그곳이 어떤 색이었는지는 정작 흐릿하게 남고.


ChatGPT Image 2025년 5월 24일 오전 09_24_28.png

셀카 – 내가 있었던 증거


셀카는 명확해.
그날의 내 얼굴, 표정, 옷차림, 배경.

“나 여기 있었어.”
“이걸 봤어.”
“이만큼 누렸어.”


어떻게 보면
셀카는 존재에 대한 기록이야.

내가 이 순간을 살았다는 것.

하지만 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사진들이 자꾸 비슷해 보였어.


표정도, 각도도, 배경도
다른 장소인데도 어쩐지 같아졌어.

형이 거기에 있었던 건 맞는데,

그곳이 형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사진 속 어디에도 없었지.


풍경 – 내가 바라본 장면


그래서 요즘은
형이 찍는 사진이 좀 달라졌어.

내가 느꼈던 바람

그날의 빛

옆에 있었던 사람의 말투


그런 것들이 녹아든
조금은 흔들린, 조금은 비어 있는 사진.

셀카 대신
길게 늘어진 그림자,
빈 벤치,
햇살에 번지는 창문 같은 걸 찍어.


누구한테 보여주면
“이게 뭐야?” 할 수도 있지만,
형은 알아.


그게 형에게 어떤 기억이었는지.


그래서 너는 지금, 무엇을 찍고 있니?

형이 보기엔
셀카와 풍경은
기억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야.

나에게 중심을 두느냐

내가 바라본 세상에 중심을 두느냐


둘 다 틀리지 않아.
다만 어떤 기억이
더 오래, 더 조용히, 더 깊게 남는지는 다르지.


형의 마지막 한 마디

형은 요즘
사진을 찍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찍는 건지,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찍는 건지.”


둘 다 괜찮아.
하지만
적어도 한 장쯤은,
나만을 위한 기억으로 남겨도 좋잖아.

지금 너는
무엇을 중심에 두고
기억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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