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치우지 못해도, 무너진 건 아닐 수 있어요
형은 예전엔
모든 걸 제때 정리해야
‘괜찮은 사람’ 같다고 생각했어.
책상 위를 비우고
메일함을 정리하고
마음속 감정도 깔끔하게 접어두고
정리가 안 된 상태는
마치 형 스스로가 망가진 사람 같았거든.
그래서 감정이 복잡해도
누가 물으면
“괜찮아”라고 말했지.
정리된 척 하는 게,
지금의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정리는 분명 필요해.
형도 책상을 비우면
머리가 맑아지고,
일을 끝내면 마음이 가벼워졌어.
지저분한 방을 정리하고 나면
무언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겨.
근데 형은 알아.
그게 너무 자주 반복되면
‘정리해야만 괜찮은 사람’이 되는 착각에 빠지게 돼.
조금만 어지러워도
불안해지고,
계획이 틀어지면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겨.
정리는
나를 다시 세우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나를 계속 무너뜨리는 기준이 되기도 하더라.
형은 요즘
가끔은 정리하지 않아.
책상에 종이가 좀 쌓여 있어도,
옷이 며칠째 의자 위에 있어도,
기분이 한동안 설명되지 않아도,
그냥 둬.
왜냐면
지금은 그걸 치울 힘조차 없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야.
버티고 있는 상태는
게으른 게 아니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야.
형이 보기엔
정리와 버티기는 반대가 아니야.
정리는 리듬을 만드는 힘이고
버티기는 멈춰 있지 않으려는 생존의 힘이야.
어떤 날은 정리해야 하고,
어떤 날은 그냥 버텨야 해.
중요한 건
둘 다 ‘살아 있으려는 방식’이라는 거야.
형은 이제
모든 걸 당장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그저 살아내고만 있는 하루에도
충분히 의미는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너도 너무 미안해하지 마.
정리 못한 너의 방,
정리 안 된 너의 마음,
정리되지 않은 오늘의 일기장.
그 안에도
분명히 숨 쉬는 너의 리듬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