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비로소 보이는 것과, 남겨야 더 깊어지는 것 사이에서
형은 오늘 책상 위를 정리하다가,
손에 쥔 물건 하나에서 멈췄어.
몇 년째 버리지 못한 메모.
다 쓴 펜.
선물로 받았지만 쓰지 않는 노트.
이건 그냥 물건이 아니라
형이 지나온 시간의 조각들이더라.
그 순간 문득 궁금해졌어.
정리는 나를 단순하게 해주는 걸까,
아니면 나를 지워가는 건 아닐까?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멋있어 보여.
불필요한 건 과감히 비우고,
지금 필요한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여.
남겨두는 건 미련
비우는 건 성숙
덜어내는 건 깨어 있음
형도 그런 삶을 흉내내봤어.
옷장을 정리하고,
디지털 폴더를 비우고,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착각했지.
그런데 말이야.
버린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더라.
정리는 단정하지만,
가끔은 그 단정함이내
감정을 잘라내는 것 같았어.
형의 서랍엔 오래된 물건이 많아.
색 바랜 사진
아무 말 없이 쓰인 쪽지
매듭이 풀린 팔찌
정리하지 않았던 것들이
어느 날은 형을 지켜줬어.
그건 버리지 않아서 남은 게 아니라,
형이 여전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었어.
쌓인다는 건
지저분함이 아니라
흘러온 시간을 담는 방식일 수도 있더라.
형이 보기엔
정리와 쌓임은
둘 중 하나만 옳은 게 아니야.
비워야 보이는 게 있고
쌓아야 깊어지는 게 있어
중요한 건
그걸 남긴 이유,
혹은 떠나보낸 이유를
네가 알고 있느냐는 거야.
형은 이제
정리된 책상 위에
하나쯤은 남겨두기로 했어.
완벽히 비우지 않은 구석,
조금 복잡해도 마음이 놓이는 그 공간.
형다운 건
어쩌면 그 정리되지 않은 마음 한 칸이더라.
너는 지금,
무엇을 남기고 있어?
그리고
그건 아직도
네게 소중한 무엇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