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그림자 하나》

오늘도 퇴근길이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던 하루의 끝.

by 라이브러리 파파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꽃을 샀다.

누군가는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묻겠지만,

사실 그런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걸 나는 안다.

누군가에게 꽃을 주기 위해

굳이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도.


햇살도, 사람도, 말수도 줄어드는 저녁 무렵,

나는 작은 공장 뒷골목에 잠시 멈춰 섰다.

폐자재처럼 쌓여 있는

창틀들 사이로,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철제 사다리, 오래된 나무 문짝,

깨진 유리창의 프레임들.

그 사이에서 나는 내 하루를 바라봤다.



수많은 일들이 엉켜 있었고,

어느 것도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뒤엉킴 위로

조용히 드리운 이 그림자 하나가

어쩐지 위로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무너진 골목에서도

꽃을 들고 그림자를 남기며 걸어간다.


사실은 나도 지쳐 있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항상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다.


꽃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냥 그런 날에 더 어울린다.

말없이 위로가 필요한 하루의 끝,

내 그림자와 꽃 한 송이로 충분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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