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는 한 글자에, 나는 백 자로 답했노라
子女(자녀)란 스스로 읽기 전까지는
아비를 百科全書(백과전서) 삼는 법이라.
甲辰年(갑진년 – 용의 해) 이른 아침,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치던
첫째(長子, 장자 – 맏아들)가 물었노라.
“아빠, 공룡은 왜 멸종했어?”
이에 나는 성심을 다해
운석설, 기후변화설, 화산설까지
총동원하여 답하였더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도다.
“그래서, 공룡은 어디 갔어?”
나는 또다시 설명을 시도하였고,
딸아이는 옆에서 끼어들어 물었노라.
“아빠, 하늘에 별은 몇 개야?”
이어지는 詰問(힐문 – 꼬치꼬치 캐묻는 말)에
나는 순간 국립천문대(조선시대 천문원)
대변인이 되었으며,
그다음 순간엔
“사람은 왜 나이를 먹어?”
“왜 코딱지는 나?”
“왜 겨울에 숨 쉴 때 입김이 나와?”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고,
커피(서양 쌍화차)는 식었으며,
내 뇌는 뜨거워졌노라.
*질문은
아이들이 세상을 물어오는 방법이었으며,
나는 그 질문을 지식으로 막지 않고,
함께 길을 찾는 마음으로 품으려 하였노라.*
답을 몰라 검색하는 나를
아이들이 지켜보는 그 순간도
教育(교육 – 가르침)이었음을,
오늘 처음 알았노라.
“아이의 질문은 정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