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엄마가 더 좋아?”라는 말에 담긴 두려움
“엄마가 더 좋아?”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던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은 농담처럼,
장난처럼,
혹은 무심하게 뱉었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순간마다
내 안에서는 작은 두려움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이 달려온다.
“아빠다!”
“아빠 안녕~”
그럴 때면 참 기분이 좋다.
정말 좋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엄마가 등장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빠 말고 엄마 안아줄래.”
“이건 엄마가 해줘야 해.”
“아빠는 아니야.”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나는 슬며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어느 날,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더 좋아?”
딸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응.”
그 순간,
나는 웃었다.
정말, 진심으로 웃었다.
웃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엄마와 아이는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안고, 웃고, 화내고…
그 많은 시간을 함께 쌓아 올린다.
나는 그 틈에 들어갈 수 없다.
들어가려고 해도,
이미 그 자리는 단단하게 차 있다.
그리고 나는 또 물어본다.
“엄마가 더 좋아?”
그 질문은
아이를 향한 말이 아니라,
사실은 나 자신에게 묻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사랑받고 있는 걸까?”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가끔 이렇게 말한다.
“왜 자꾸 그런 걸 물어봐?
아이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아이 마음도 복잡해져.”
맞다.
나도 안다.
하지만 아빠라는 이름은
가끔 너무 외롭다.
사랑한다고 말할 타이밍도,
같이 있는 시간도
늘 부족하기만 하니까.
딸아이는 어느 날
내 옆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말했다.
“아빠는 나랑 놀아주는 게 좋아.”
“엄마는 나를 챙겨줘서 좋아.”
“둘 다 좋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살짝 고개를 돌렸다.
괜히 울컥할 것 같았으니까.
사실,
나는 엄마보다 잘하지 못한다.
아이의 감정도,
아이의 습관도,
아이의 잠자는 타이밍도
아직 서툴기만 하다.
그렇기에
‘엄마가 더 좋아?’라는 말에는
어쩌면 나의 미안함과
자격 없음에 대한 불안이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이제 그 말을 줄이기로 했다.
아이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더 단단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다.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사랑하는 걸 먼저 실천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에게 사랑받는 아빠가 되는 길은
결국 아내를 존중하고 도우며
‘좋은 남편’이 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아이들은 본다.
말보다, 표정보다,
행동으로 기억한다.
“아빠, 내가 아빠 좋아하는 거 알지?”
어느 날, 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엄마가 더 좋아?’라는 질문에는
아빠의 작은 외로움과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