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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고 구멍 난 속옷

엄마도 여자다.

by 안영

난 속옷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내가 속옷을 사 입기 시작하면서 속옷부터 잘 갖춰 입어야 완벽히 갖춰진 것 같아서 조금 비싸도 신경 써서 속옷을 골랐다. 그랬던 내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속옷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렸다.

그저 편한 게 좋아졌고 브랜드로 필요 없고 이쁜 것도 필요 없어진 거다. 계절마다 바꾸던 속옷은 구멍 나기 전까지 입게 되고 늘어난 속옷도 버리지 않고 몇 번을 더 입고 있었다. 러면서 속으로 ' 뭐 어때,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하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고 있었던 거다, 잠옷도 이쁜 잠옷만 고집하다가 그 이쁜 잠옷이 어깨끈이 너덜너덜해진걸 남편이 보고 한마디했다.

"새 걸로 하나 사 입어요~!"

"멀쩡한데 뭐요 ㅎㅎ 내가 바느질해서 입을게요."

그때, 남편 표정을 보았지만 못 본척했다. 더 대꾸해 봤자 싸움만 날 테고,, 그러다가 엄마 생각이 났던 거다.

오래전 "엄마는 속옷이 이게 뭐고! 돈 벌어서 엄마 속옷은 안 사 입고 뭐 하는데!" 하며 엄마에게 소리 지르던 내가! 엄마처럼 늘어나고 구멍 나려고 하는 속옷을 입고 있는 거다.

엄마도 여잔데 왜 저럴까, 도대체 엄마는 왜 자기 속옷 하나 제대로 안 사 입을까, 엄마를 불쌍하다 생각하고 답답하다 생각하는 못된 딸은 싫다던 엄마의 모습으로 엄마가 되어서 살고 있다. 안 사 입는 게 아니었다, 못 사 입는 게 아니었다.

그냥 우선순위에서 속옷이란 게 밀려난 거다. 굳이 사야 할 이유가 크게 없었던 거다. 이제야 나도 그걸 깨닫는다. 하지만 엄마가 그러는 건 싫다. 이러니하게도 내가 지금 그러고 있으면서말이다.


딸이랍시고 제대로 속옷 한번 사드리지도 않고서 볼맨소리만 해댔었다.


여름이 벌써 시작이다. 엄마랑 손잡고 속옷쇼핑을 나서봐야겠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엄마와 커플속옷을 사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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