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꽈리의 존재

넌 언제부터 내 안에 있었니?

by 안영

외래로 내려와 영상을 보며 얘기하자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도 그땐 어떤 의미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정말 1도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엄마는 느낌이 이상했었는지 표정이 조금 굳은 채로 "왜 내려오라고 하는고?" 하셨지만 난 그냥 웃으며 가보자 했던 것 같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니터엔 나의 뇌영상이 띄워져 있었고, 사뭇 진지함이 도는 진료실에서 그때서야 난 아차했다.

'웃으며 넘길 문제는 아니구나'하고.


"자, 여기 보이시죠. 자세히 보셔야 합니다. 여기 왼쪽 눈 아래쪽입니다. 뇌혈관이 꽈리를 트고 튀어나와있어요. 사이즈가 작지 않고 좀 위험합니다. 이게 뇌동맥류라는 건데 지방에서 수술하시지 마시고 서울로 가세요. 개두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아직 미혼이시라서 미용적인 문제도 있고, 꽈리가 큰 편이라 큰 병원을 가셔야 해요. 보통은 전조증상이 없는데 몇 번이나 그러셨던걸 보면 빠른 시일 내에 가시는 게 좋을듯합니다. "


엄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고, 난 엄마 앞이라 애써 웃었지만 당황스러웠고 머릿속이 하얳다. 머리를 열고 수술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에 이게 분명 큰 일인건 같은데, 낯선 단어인 뇌동맥류라는 게 체감되지 않아 무섭진 않았고 그저 멍했던 것 같다. 입원실로 돌아와 짐을 챙기는 동안 엄마는 오빠와 새언니에게 연락했고, 그 병명에 대해 사전지식이 있었던 그들은 난리가 났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언제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 빠의 초등학교 동창 중에 아산병원에 근무 중인 친구가 있어서 급하게 예약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지인찬스를 사용할 수는 없었으나 알아봐 준 덕분엔 바로 진료날짜를 잡았다. 한 열흘간의 시간이 있었던 듯한데 지금은 그 기간의 기억이 별로 없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괜찮다고 했지만 엄습한 죽음의 공포는 두통을 더 유발했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게 했다. 서울로 향하던 그 전날, 엄마와 혹시나 모르니 짐을 챙기자 고했다. 급한 상황이 생겨 응급이라도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간단히 입원준비물을 챙겼고 엄마와 난 버스에 올랐다. 우리 엄마는 걱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내 앞에서 표 내지 않으려 애써 웃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나 역시 그랬다. 다 큰 딸이, 시집도 안 간 딸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순간들에 놓여있는데 그 두려움을 보이긴 싫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진료실에 들어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기 보이시지요? 요 꽈리가 참 못생겼습니다. 못생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지요? 수술날짜 잡으시고 가세요!" 이 짧은 문장을 들으려고 왔던가 하던 찰나에 교수님은 다시 물으셨다.

"집이 어디라고 하셨지요?"

"경남 진주인데요"

"아,, 그럼 안 되겠네,, 간호사. 스케줄 조절 좀 해보자. 빨리 해야 될 거 같다." 그렇게 담당교수는 먼 거리를 오가는 내가, 그리고 수술 전까지의 내가 불안했었는지 바로 입원을 권했고 사전검사가 있어 그것부터 하고 입원은 다음날로 하기로 한다. 그나마 서울에 이모가 계셔서 병원가까이 호텔에 하루 머물기로 하고 엄마, 이모와 호텔로 향했다. 그 날밤을 난 어찌 보냈던가.

그날의 일기가 핸드폰 노트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잠못이뤘던 그 날밤.



keyword
이전 01화그날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