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월 11일

중환자실의 공포

by 안영

아직도 폰 노트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는 그날의 기록. 잠이 오지 않았고 두려웠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그 날밤. 병원에서 사전검사를 다 마친 후 호텔로 향했을 때 복병이 한 가지 있었다. 한참 여름이었고, 여름엔 손발톱에 젤네일을 하고 있었는데 수술 시에 손가락발가락에 심박체크나 산소포화도 이런 거 때문에 네일을 지워야 한다는 거였다. 급하게 네일숍을 찾을 수도 없었고, 정신도 없었다. 편의점에 가서 이모가 아세톤을 사다 주셨고 난 열심히 지워봤으나 젤네일 특성상 그냥 아세톤으로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다. 네일을 받은 지 얼마 안됫을때라 억지로 떼도 떨어지지도 않았다. 딱히 방법이 없었고, 편의점에 다시 가서 연필 깎는 칼을 사다가 긁어내고 나머지를 아세톤으로 지워냈다. (그때 이후로 난 젤네일을 하지 않는다. )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엄마와 택시를 탔다. 아빠는 새벽 첫 차로 오셨고 전 남자 친구(현 남편)는 올 수 없어 시간이 되는 내 절친을 보내 실시간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당시 나는 비혼주의였지만 연애는 했고! 남자 친구만큼이나 귀하고 소중한 쌍둥이 조카가 있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통화를 우리 둥이들과 하는데,, 울컥 목이 메었다.

"고모 아프지 마요~ 수술 잘하고 우리 만나요~"

"응~ 고모 괜찮아~ 고모 다하고 전화할게! 사랑해"

그 말들이 얼마나 소중하든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환하지만 차갑던 수술실, 그리고 마취, 그리곤 기억이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회복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가던 길 엄마와 절친이 울고 있던 모습을 봤다. 꿈이었나 싶었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꿈이 아니었다. 입원실로 가길 바랐지만 만약을 대비해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마취가 깨기 시작하며 두통이 시작되었고, 웬만한 진통제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몸도 그러했다.( 뇌 안에 들어온 코일을 뇌에서 받아들이는데 꽤 오래 걸렸었다.) 아픈 건 둘째치고 중환자실은 너무 두려운 공간이었다. 정말 중환자들이 누워있었고 쉼 없이 벨이 울리고 간호사들은 바빴다. 중환자실 안에서도 1인실 같은 곳에 있었는데 문은 열어두었고 창문도 블라인드를 올려두었다. 정신이 들면서 그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귀에 들려왔다. 무서웠다. 진통제 때문인지 무서워서 그랬던 건지 난 소리를 지르며 간호사와 의사를 찾았고 여기 있기 싫으니 입원실로 보내달라고 진상짓을 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없었고 난 죽음이 공존하는 중환자실에서 두통과 공포로 하룻밤을 보냈다.


keyword
이전 02화꽈리의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