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에서 직원들과와 관계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옆에 있는 사람이 계속 함께 회사에 있을 줄 알았다.
함께 뜻을 공유하고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면서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상사인 내 앞에서 하는 말들을 온전하게 다 믿지 않게 되었다.
내가 들었던 말들과 다양한 루트로 들어오는 말들이 너무 달랐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사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아이들이 악의없이 한 말에 상처를 받아도, 교육자이기에 그것을 고스란히 삼켜야 한다고 한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가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상사도 부하직원에게 상처를 받는다.
반드시 상사만이 부하직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쌍방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보이는 것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원이 사원에게 넓은 시야를 기대하면 안 되며,
사원이 상사의 시각에서 회사 일을 바라볼 수는 없다.
사원은 사원인 이유가 있고, 상사는 상사인 이유가 있다.
작은 회사의 경우, 같은 공간에 있는 경우도 많고
서로의 많은 것을 직접 공유하다보니
서로 사정을 직관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아까 봤으면서 나 그정도도 이해 못해줘?
라는 섭섭함이 생길 수 있다.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애초에 내가 아닌 남에게 이해를 바란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나는 버스 운전사다.
가끔 버스가 멈출 때도 있고, 길을 잘못 들 때도 있지만
깃발 꽂힌 목적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승객을 태운다.
버스에 오래 타고 있는 승객도 있고, 빨리 내리는 승객도 있다.
오래 타고 있는 승객에게는 고맙다고 생각하면 되고
중간에 내린 승객에게는 잘 가라고 인사하면 된다.
어차피 버스는 승객이 수시로 타고 내리는 곳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과는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주고
맞지 않는 승객과는 헤어지면 된다.
문제는 나의 운전에 방해되는 승객이 내리지 않을 때이다.
이런 승객이 하필 오래 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내리게 하는 것, 즉 사직서를 쓰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기적인 평가가 필요하며,
평가에 대한 내용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
평가 내용은 정량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몇 분에 몇 건 고객 상담을 처리해야 하는데
지속적인 교육에도 몇 건 밖에 처리하지 못했음
등의 표현으로 기록해 두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 내용을 주기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기록만 해 둬서는 안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글을 다시 한번 쓰겠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면, 원치 않는 승객은 스스로 버스에서 내리는 경우가 많다.
헤어질 때, 한 가지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내가 운전하는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싶은 사람이었을 지라도,
내릴 때에는 웃으며 좋은 말로 마무리 해야 한다는 것.
이 때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했다, 고마웠다, 앞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3종 세트로 가득 채운다.
사람들은 안 좋은 기억에 대해서도
시간이 지나면 미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회사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지 않은 이상은 3종 세트로만 마무리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의 기억에서 회사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어차피 앞으로 안 볼 사람, 얼굴 붉히면 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