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ire Aug 05. 2021

버스

273번 버스를 타고 신촌에서 아현동, 충정로를 지나 종로 1가부터 4가까지, 그리고 혜화동까지 고불고불 가는 그 여정을 난 참 사랑했다. 수업이 끝나는 평일 네 시경 273번 버스 맨 뒷자리 오른쪽 높은 좌석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는 그 한 시간여의 시간은, 한 뼘 거리의 세상을 마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속 한 장면처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만들었다.

학교 앞에서 올라 탄 버스는 내가 다닌 고등학교 앞을 지나, 자주 가던 영화관을 지나 종로거리를 한 발짝 한 발짝씩 지나며 새로운 사람들을 태웠다. 종로 1가에서는 셔츠 입은 아저씨를, 종로 2가에서는 양손 가득 짐을 든 아주머니를, 종로 3가에서는 한 손엔 파고다 어학원 교재 더미, 다른 한 손엔 어묵 꼬치를 든 학생을, 그리고 종로 4가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를. 맨 뒷자리에 앉아 이들의 표정과 모습을 보며 그들의 하루는 어땠을까, 버스 타기 전 무엇을 하고 누구와 함께 했을까 상상하는 것은 이어폰 꽂은 두 귀와 오므린 입술 뒤에 숨은 나의 자유의 세상이었다.

종로 끝에서 좌회전을 해 이화동에 들어서면 해는 슬슬 졸림이 가득하다.  방송통신대를 지나 대학로,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 성곽 옆 언덕을 올라갈 때쯤이면 이제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삼선교, 한성대입구역까지 오는 길은 늘 흥미로운 이야기 한 단락을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그 시절 나는 '3호선 버터플라이' 같은 음악을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콜드플레이'도 들었던 것 같고, '델리스파이스'도 좋아했고, '이규호'도, '토이'도, '윤상'도. 실은, '윤종신'만 들었던 것도 같네. 해는 이제 주황색, 오렌지 빛. 나른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