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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Aug 05. 2021

미니쉘 하나와 장미 한 송이

삼선교 삼익아파트 613호. 수십 년이 된 아파트 복도 끝에 부스럭부스럭 파실파실 소리가 울리면 6층 아이들이 와르르 “주현이 아빠 온다!”라고 소리쳤다. 당직을 마친 아빠가 일찍 집에 오던 토요일 오후엔 부스럭부스럭 파실파실 검은 봉지 소리가 났다. 작은 방 높은 창문 너머로 “주현이 아빠다!” 소리가 들리면, 파다닥 의자를 짚고 책상을 올라 빼꼼 까치발로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재촉하는 발걸음을 확인하곤 “압-빠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문을 향해 돌진. 아빠 손에 검은 봉지. 그 속엔 장미 모양이 예쁘게 그려진 ‘미니쉘’ 초콜릿 하나, 그리고 빨간 장미 한 송이가 있었다. 달콤한 장미는 내꺼, 예쁜 장미는 엄마꺼. 얇은 비닐 막을 벗겨내면 다섯 개 작은 초콜릿이 쪼로록. 하나하나 조심히 벗겨내 입안 가득 넣고 헤헤 거리며 돌려 돌려 녹여먹다 보면 입술 잔뜩 끈적끈적 달콤함이 오래도록 남아 행복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복도와 검은 봉지 소리 그리고 동네 아이들의 그 호들갑스러웠던 외침에, “아빤 왜 그렇게 미니쉘 하나, 장미 한 송이를 사 왔어? 다른 것도 아니고..” 묻는다. 눈썹이 하얘진 아빠가 아랫입술 실룩하며 말한다. “그때 뭐 뭐라도 사주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까. 삼선 시장 앞 그 꽃집에서 한 송이 사고 슈퍼 들러 이것저것 보다 젤 예쁜 거 니꺼 초콜릿 하나 사고 뭐 그런 거지 뭐.”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떠나지 못했던 그 낡은 삼익 아파트는 복개된 성북천 자리가 되어, 시멘트 계단과 담배꽁초 가득하던 옥상 모래터, 그리고 그 안에서 온갖 탐정놀이 소꿉놀이 술래놀이하던 아이들은 흔적이 없고, 우리 아빠는 다디단 초콜릿을 그렇게 좋아한다. 그리고 난 퇴근길 슈퍼를 지날 때면 습관처럼 초콜릿을 사서 냉장고 한편에 넣어둔다. 오늘은 미니쉘 요구트르 맛을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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