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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Oct 04. 2023

식빵에 계란옷 입히기

[추억 한 그릇]  너는 언제부터 '프렌치토스트'였니.


며칠 전, 언니가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보겠다며 재료 주문에 나섰다. 나는 이곳저곳에서 레시피를 모아가며 요리에 대한 욕심들을 풀어놓은 시간들이 무색하게 정작 프렌치토스트를 직접 만들어본 기억이 없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프렌치토스트는 우리가 중고등학생 시절, 엄마 대신 늘 식사뿐 아니라 도시락까지 챙겨주었던 아빠가 자주 만들어 주었던 추억의 메뉴다.


고등학교 점심시간, 도시락 통을 열었는데 익숙한 토스트가 들어 있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계란물을 입혀 구운 토스트다. 함께 점심을 먹을 친구들을 배려한 아빠는 몇 가지 반찬도 통에 담아 도시락 가방에 넣어 주셨다. 토스트와 반찬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철두철미'한 아빠의 성격이 보여지는 도시락이다. 


우리 가족에겐 특별하지 않았던 메뉴였기에 함께 도시락을 먹었던 친구에게도 권하지 않고 토스트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하나 먹어봐도 돼?"

토스트를 부러워하며 조심스럽게 하나 먹어 봐도 되는지 물어보는 친구의 반응이 참 어색하고 낯설었다.


"그냥 계란물을 입힌 식빵인 걸."

무심한 대답과 함께 젓가락으로 토스트 하나를 집어  친구의 도시락 통에 넣어주었다.


토스트의 맛을 궁금해하며 부러워하던 친구는 입에 넣기도 전부터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정말 정말(!!) 부드럽고 맛있다는 감탄을 연신 늘어놓는다. 처음 먹어보는 토스트라는 말과 함께 자기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메뉴라는 설명까지 덧붙이며 누가 만든 건지, 어떻게 만든 건지 꼼꼼하게 레시피까지 물어본다. 그렇게 긴 감탄사와 반응 역시 어찌나 낯이 간지러웠는지.


나는 (솔직히 말하면 직접 만들어 본 적도 없으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법 자세하게 레시피를 가르쳐 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식으로 설명해 주었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사실 그날의 나는 프렌치토스트에 대한 어떠한 사전지식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보겠다는 언니에게 그런 일이 있었노라고 처음으로 그때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모두 공유하는 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먹은 이야기들이 많다.


언니는 아빠가 토스트를 만들어 준 것은 기억하면서도 도시락에 넣어준 기억은 없는 듯했다. 어쩌면 우리의 나이 차이만큼 아빠가 만들어준 도시락의 메뉴 구성에도 약간의 세대 교체가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아빠는 어떻게 계란물을 입혀서 만들 생각을 했을까. 나이 먹고 생각나서 아빠한테 한번 물어봤었는데

아빠는 그냥 알지 그걸 왜 몰라 그러더라고."


아빠는 늘 그런 식이다. [그냥 알지, 그걸 몰라..]라는 식.


아빠 나이대의 남성이 모를 법한 것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빠가 신기하고 궁금해서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보면 아빠는 늘 그냥 알지, 그걸 왜 몰라라고 답했었지.  


"냉동된 식빵으로 만들어야 해서 촉촉하게 만드려고 계란물을 입혀본 게 아닐까?"


아빠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에 탐구심과 응용력도 뛰어난 분이었으므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별스럽지 않은 소재일 수 있지만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 속의 일들은 언니와 나의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정작 아빠는 당신이 만든 토스트가 '프렌치토스트'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나서도 한참 후에야 프렌치토스트라는 메뉴를 처음 알았고, 계란물을 입힌 식빵이 아빠만의 독창적인 메뉴가 아님을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빠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프렌치토스트는 어떻게 처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새삼 궁금하다.


현생에서 아빠와 이별 후 아빠에 대해 궁금한 것들은 대체로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것들이다. 아빠와 함께 있을 땐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던 것들, 앞으로도 궁금할 일이 있을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왜 그렇게도 궁금한지. 






언니는 며칠 후 야심차게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격대가 제법있는 식빵을 구입해서 계란물을 입혀 버터에 구운 후 오크라와 스테비아 토마토까지 곁들여 그릇에 담았다.  하지만 곧 맛을 보더니 아빠가 만든 것만큼 부드럽지 않다며 아쉬워한다. 얇게 썰린 식빵을 사용했어야 하는데 부피감 있는 식빵을 사용해서 푹신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잘 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맛보다 중요한 것은 토스트에 담긴 그 시간 속의 감성이었다. 



아빠의 두껍고 뭉툭한 손으로 계란물을 듬뿍 입혀 만든 토스트가 정성스럽게 담긴 나의 도시락.

추억 속의 도시락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다.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기억을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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