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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Oct 02. 2023

그렇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추억 한 그릇] 어느 해의 평범한 명절날 만든 '모둠전'



"전이 먹고 싶었어?"


"명절인데 너희들 전도 하나 못 먹고 보내는 것 같아서.."


처음 시작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둠전과 몇 가지 과일 종류를 사들고 퇴근하는 아빠의 모습과 목소리는 한결같이 선명하다.






아버지는 늘 제사를 맡아 준비해 주시는 큰어머니에게 넉넉한 봉투와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물 한 그릇 떠놓고 해도 정성이면 충분하니 부담 가지지 마세요."


세월이 지나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의 차례와 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명절을 온전히 가족끼리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주말이나 휴일에  맛집 탐방을 다니는 것이 일상이라 명절이라는 시간은 또 다른 휴일을 의미할 뿐이었다. 오히려 설날이나 추석같이 큰 명절엔 유명한 맛집도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의 명절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모처럼의 긴 휴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언니와 나는 특별한 음식들을 계획해서 미션 수행하듯 우리만의 명절상을 차렸다.




퇴근길 아빠가 음식을 포장해 오는 일만큼이나 명절날 전을 포장해 오는 일도 일상으로 생각했던 어느 해,


"전이 먹고 싶었어, 아빠? 말을 하지~" 나의 말에


"너희도 명절 기분 좀 내야지."라고 대답하는 아버지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



'전'이라는 음식은 언제나 먹을 있는 흔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 명절이기에 특별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때였다. 요리에 취미를 붙이면서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음식들을 맛 보이는 걸 즐거워했지만 설날이 아니어도 자주 떡국을 끓이고, 특별한 명절이 아니어도 '전'을 자주 부쳐 먹는 집이 아닌가. 하지만 옛날 사람인 아버지에게 명절 음식이라는 것은 분명 다른 감각과 의미로 다가왔을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더 특별하고 좋은 음식들이 충분하지만 세상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다음 명절부터 우리는 간단하게라도 명절 음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제사 음식도 아니고, 식구가 많지도 않기에 많은 양의 전을 부칠 필요는 없지만 명절 기분을 낼 만큼의 충분하고 다양한 종류의 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느 해에는 호박전, 팽이버섯전, 고기전을 부치기도 하고, 다른 해에는 연근전, 동태전을 추가하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생김새에 반해 꼬치전을 부친 해에는 가족들의 반응이 좋아 꼬치전만큼은 매년 빼놓지 않고 만들기로 혼자만의 다짐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집은 그렇게 격식을 중시하는 집안(?)은 아닌지라 차례상이 어떤지 제사상이 어떤지, 주로 어떤 전들을 부치는지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기에  잘 모른다. 단지 내 만족을 위해서 만들 뿐.






명절날 집에서 전을 부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더 이상 모둠전이 든 비닐봉투와 함께 퇴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늘 적당한 양만큼만 부쳐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매번 양조절에 실패해 많은 양의 전이 탄생되었고,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 덕분에 전 냄새가 가득한 명절을 보낸 지도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근사하네."와 같은 세상의 모든 칭찬과 함께 맛있게 전을 먹어 줄 아빠는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올해도 아버지를 위한 전과 몇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 아빠가 좋아했던 미역국에 수제비, 꼬치전과 버섯 전, 보리굴비, 과일 몇 가지, 잡채 등. 역시 우리 만족이다.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던 '전'이 아버지 덕분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아빠와 함께 했던 2018년 추석의 전.  그  해에는 [꼬치전, 호박전, 동태전, 고기전]을 만들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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