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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Oct 05. 2023

호기심 가득한 요리 탐구생활

[추억 한 그릇] 텔레비전 속 요리의 발견


내 기억 속, 어린이 시절의 나는 편식이 심한 아이로 기억된다.  깻잎이나 미나리같이 향이 강한 음식은 당연히 입에 대지 않았고, 콩밥의 콩은 모두 밥뚜껑에 한 알 한 알 골라내는 작업을 거쳤다. 육개장에 떠 다니는 대파와 다진 마늘의 조각들도 깔끔히 제거한 후에야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가족들 중 누구도 골고루 먹어야 한다던가, 힘들게 골라내야 하는 작업을 꾸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작업을 꿋꿋이 혼자서 해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가족들에게 아주 의존적인 아이였는데 어떻게 저런 번거로운 작업들을 혼자 해냈던가 새삼 기특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유일하게 독립적으로 해낸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주 드문 일이었을 것이기에.


그런 시간들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골라낸 콩과 대파, 마늘 등은 음식 남기는 것을 몹시 아까워하는 아버지가 드셨는데 어린 마음에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아버지가 드시는 것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싫은 마음을 누르고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나는 특별히 싫어하는 음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 소소한 행복거리가 추가된 것이리라. 감사한 행운이다.


그런데 문득 어쩌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의 시작은 기억보다 오랜 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던 무지렁이 시절, 언니와 함께  TV에서 방영 중인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자세한 스토리를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한 남자아이가 자신의 그림자와 친구처럼 대화하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는 그 만화영화에서 주인공 남자아이는 바나나와 요구르트, 우유를 섞어서 음료수를 만들어 먹는다. 언니와 나는 맛이 너무도 궁금해서 만화 '그 음료'를 만들어 먹을 있게 되는 날을 기다렸다. 부모님이 바나나를 사 오시는 날을 기다렸다가 슈퍼에 달려가서 우유와 요구르트를 사 왔다. 그리고 그날 설레는 마음으로 만화영화에서 나온 '그 음료'를 만들어 먹어 보았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기억하는 그 만화영화가 정말 그림자와 친구처럼 대화하는 내용이었는지, 남자아이가 주인공인 것은 확실한지 다른  만화영화와 섞어서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


우리가 만화영화에서 본 음료수를 만들어 먹었다는 사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맛이 훌륭해서 이후로도 꽤나 여러 번 만들어 먹곤 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음식에 대한 이런 호기심은 계속되었다.


'달자의 봄'이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인 달자가 엄마가 아플 때마다 만들어주었다며 남자친구에게 '김치콩나물 죽'을 만들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김치와 콩나물을 넣은 죽이라니. 그 맛이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아  바로 만들어 보았던 기억이 난다. 역시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정말 맛있어서 가족들 모두 좋아해 주었다.


'맛'에 대한 의심과 불신으로 직접 만들어서 맛을 봐야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순수하게 음식에 대한 로망으로 만들어본 요리도 있다.


바로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모니카가 직접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라자냐'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드라마를 종영이 된 이후 몇 년이 지나서야 몰아서 시청하고 뒤늦게 팬이 되곤 하는데 프렌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영한 지 5년쯤 지나서야 처음 그런 시트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라자냐'는 그야말로 내가 로망 하던 그런 음식이었다. 층층이 쌓여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색감 있고 푸짐한. 맛을 봐야 하는 순간 그 완연한 모습이 망가지는 게 아쉬운 그런 요리. 높이가 높은 케이크나 여러 층 쌓아 올린 떡, 밀푀유나베, 어쩌면 꼬치전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먹을 때보다 보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언젠가 꼭 만들어 봐야지 하던 찰나에 마트에서 라자냐 누들을 보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왔던 기억. 그리고 라자냐 누들과 소스, 모차렐라 치즈, 토핑들을 번갈아 올려가며 오븐에 넣을 때의 그 설렘을 아직까지 기억한다.


가족들은 흔한 스파게티면의 파스타만 접하다가 넓적한 모양의 층이 높은 라자냐를 보고 다들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만들기 어렵지 않지만 만들어놓고 나면 제법 근사해서 모두가 좋아했던 요리.


요즘은  라자냐라는 요리도 제법 흔해진 탓에 예전 같은 정성을 담기보다는 여러 가지 채소를 소모할 일이 있을 때 라자냐 누들은 생략하고 가지나 호박 등을 얇게 썰어 층을 올려 만들곤 한다.


추억할 음식이 많다는 것 역시 심심한 나의 인생에 큰 행운이다.



인생 첫 라자냐.  오븐에 넣으며 설렜던 시간.
두부라자냐와 가지라자냐. 어떤 재료로 층을 올리든 맛이 없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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