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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Oct 06. 2023

세상의 모든 국수 예찬

[추억 한 그릇 ] '잔치국수'에서 '파스타'까지.


'아빠는 모든 음식을 똑같이 좋아한다.'라고 순진하게 믿고 지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자장면이나 짬뽕, 탕수육이나 유산슬, 토마토스파게티나 크림파스타. 어떤 걸 고를까 아빠에게 메뉴를 주면 아빠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아빠는 아무거나 상관없어.  둘 다 좋아."


우리는 당연하게도 아빠가 어떤 호불호도 없이 모든 음식을 아주 공평히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언니와 나는 부엌살림을 시작하면서 아빠의 미세한 불호를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둘 다 좋다'는 황희 정승 같은 표현 너머에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던 <비교적 확고한> 취향이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모든 음식을 감사하게 생각하기에 늘 맛있게 먹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아버지가 어떤 음식을 더 좋아하는지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맛을 칭찬하는 표현, 한입에 들어가는 음식의 양,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속도, 음식에 대해 감탄하는 목소리의 높낮이 등을 통해서다.



어떤 날의 아빠는 별것 아닌 음식을 앞에 두고 칭찬을 멈추지 않는다.


"아빠는 매일 국수 먹어도 맛있어."

"네가 끓인 라면이 정말 맛있어."

"근사하게 끓였네."


이런 칭찬은 대개 국적을 불문하고 '국수'로 통칭되는 음식이 상에 올랐을 때다. 한국의 잔치국수, 칼국수, 라면, 이탈리아의 파스타 등등.. 좀 더 개념을 넓혀 보면 '밀가루'음식의 범주에 들어가는 수제비까지. 내가 특별히 맛있게 국수를 끓여서가 아니었다. 아빠는 원래 국수를 정말 좋아하는 분이었던 것이다.


무언가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 드문 아버지셨지만 정말 극히 드물게 요청하는 음식들은 모두 밀가루 음식들이었다.


보통은 "집에 면 있니?" "국수 있니?"라고 에둘러 표현하시거나 수제비가 그리울 땐 "밀가루 있니?"라고 묻는다. 어느 날 우연히 우리가 면 종류의 요리를 한 날에는 (그것이 라면이든, 파스타든 상관없이)  "안 그래도 국수 생각이 났는데 기가 막히게 끓였네!"라며 얼굴에 화색이 도는 아버지.



(밀가루 음식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우리 집에서는 '국수'로 칭하는 요리들이 식탁에 오르는 횟수가 서서히 줄어들 때쯤 아빠는 "매일 먹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 매일 먹어도 맛있어."라는 말로 모든 국수 요리를 다시 한번 극찬한다.






7년 전,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 마음에 회사 근처 시민대학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웬만한 요리는 요리책이나 블로그를 탐독한 덕분에 큰 기대 없이 들었던 수업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맛있는 요리는 처음이었다. 수강생들은 개인 실습을 한 후 완성된 요리를 저녁으로 먹거나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는데 나는 집으로 가져오는 쪽을 택했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식사 시간이 훌쩍 지난 9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가족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 오는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었다. 3개월 동안 맛볼 수 있었던 푸타네스카 파스타, 크림소스 스파게티, 리조토, 크레마 등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 중 아버지가 가장 극찬했던 요리들은 다름 아닌 이탈리아 국수, '파스타'요리들이었다.  



국수예찬론자인 아빠와 같이 나 역시 '국수'모양으로 생긴 음식들을 참 좋아한다. 아빠와 꼭 닮은 딸이기 때문이다. 데칼코마니와 같은 부녀지간.





요리잡지를 보고 만들었던 연근우동볶음, 파스타샐러드
요리수업 후 포장해 온 크림소스파스타, 채소라이스오븐구이, 쌀디저트크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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