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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Oct 12. 2023

아주 우연한 기록

기록되지 않은 어느 날의 기억


오래전 다이어리를 펼치면 평범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동네 친구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나누어 먹던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로 기억된다.


글자를 띄엄띄엄 읽기 시작하고 삐뚤빼뚤한 그림일기를 완성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기록을 멈춘 적이 없다. 내 나이만큼 쌓아온 시간들 중 기록되지 않은 여러 날들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그러나 몇 글자의 단어만 끄적여 놓았을 기록일 뿐인데도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생생히 기억되는 날도 있다. 때로는 글자로, 때로는 사진으로 남겨두길 집착하는 이유다.






사회초년생이 된 언니가 장만해 준 사진기를 들고 초점이 맞지도 않는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버튼만 누르는 어설픈 실력이라 감히 '피사체'를 '피사체'라 부르기도 미안한 마음이다. 애초에 '잘 찍은 사진'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사진기도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한 채 세월을 맞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피사체를 담아내기 위함이 아니라 순수하게 기록을 위한 내 만족일 뿐이다.


특별한 날을 기록하다 보니 평범한 날에도 어설픈 사진 찍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런 마음은 한 끼 식사를 기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시작은 가족들과 함께 갔던 맛집의 음식들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몸이 약한 엄마는 긴 시간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것을 힘들어했고 아버지는 엄마의 부재 아닌 부재를 당신만의 방식으로 채워주셨다. 즉석식품으로 힘들게 시작된 아빠의 요리 실력은 떡국과 김밥, 닭볶음탕  등 점차 아빠만의 특식으로 발전했다. 주말엔 평일에 계획해 두었던 맛집으로 데려가 당신이 직접 만들어 줄 수 없는 요리들로 우리의 일상을 채워 주었다.


사진기로 어설프게 기록해 두었던 음식 사진들을 보면서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여행 기록이 많지 않은 대신 안팎으로 먹을거리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세월의 흐름만큼 소복이 쌓여있다는 것.


엄마 손을 거쳐, 아빠 손으로, 그리고 언니 손을 지나 무지렁이였던 나의 마음을 담아 차려 낸 우리 집 식탁엔 우리 가족만이 공유하는 농밀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평범한 식도락 일상은 세월이라는 시간을 입고, 감성이라는 채색이 더해져 아름다운 동화로 다시 태어난다.


그중에서도 우리 가족의 손으로 어설프게 빚어낸 요리들에 대한 기억들을 소환해 보려고 한다.



우리들의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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