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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Mar 31. 2023

추억을 담은 소주 한 잔

[추억 한 그릇] 베이컨말이와 불막창



금요일 저녁, 회식이 있는 날이다. 다름 아닌 '가족 회식'.  언니가 저녁 먹자는 지인의 부탁을 "오늘은 동생이랑 회식 있어요."라는 말로 거절한 이후 금요일 저녁은 암묵적인 '가족회식의 날'이 되었다.




 

아빠가 계실 땐 퇴근길 식당에 들러 안주거리가 될만한 이런저런 음식들을 포장해 왔다. 날 것을 좋아하는 가족들이라 생선회나 육회가 주된 메뉴였고 가끔은 족발이나 통닭 같은 것들을 먹기도 했다.


가끔씩 "아빠, 딸들이랑 한잔 하는 게 더 좋지?"하고 물으면 아빠는 이제는 집에서 마시는 술이 훨씬 편하고 더 좋다고 하셨다. 실제로 우리와 함께 가족회식을 하면서 모임에서 술을 거의 드시지 않으셨고, 금요일을 은근히 기대하시는 눈치였다.


"이번주는 메뉴가 뭐냐."

수요일이나 목요일 저녁이면 늘 메뉴를 먼저 물어보셨다. 우리는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이번 금요일은 뭘 먹을까 하는 것이 행복한 고민거리였다.


아빠는 소주를 좋아했지만, 우리는 와인을 고집해서 '소외되기 싫은 아빠'는 와인도 좋다 하셨다.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고 늘 건배를 하고 마셨다. 아빠가 없는 지금, 우리는 와인보다 소주가 더 달다 느낀다.


그렇게 서로의 잔에 술이 더 많다 적다 유치한 장난도 하고 시시콜콜한 옛이야기를 나눈다. 주제는 대체로 아빠에 대한 고마움, 노고 치하(!) 등 다양하다. 갑자기 서로 악수를 하기도 하고, 주먹을 쥐고 맞대면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살자고 결의를 다지곤 했다.

"이런 게 행복인 거야."아빠는 일상의 소소한 모든 것들에서 늘 똑같은 결론을 말한다. 함께 팔짱을 걷고 산책을 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소한 문자 하나로도 아빠의 <이런 게 곧 행복이다>라는 말이 뒤 따랐다. 우리는 그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늦게서야 깨닫는다. 이제는 아빠가 아니라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되었다.






아빠가 없는 지금도 금요일 저녁, 여전히 회식을 한다. 이번 메뉴는 베이컨말이와 마트에서 산 불막창에 대파를 잔뜩 추가했다. 먹고 보니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불닭발까지 소환. 오븐에 구운 고구마까지 배불리 먹었다.


베이컨말이는 대학교를 갓졸업하고 한창 요리에 재미를 느낄 때 만들었던 메뉴다. 나는 아빠가 매운 음식을 못 드시는 것이 늘 아쉬워서 따로 양념을 하지 않아도 모양이 그럴듯해 보이는 메뉴들을 선별해 만들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있었다.


늘 구워서 밥 위에 얹어먹기만 했던 베이컨에 다양한 채소들을 채 썰어 말아주니 손재주가 특별하지 않아도 제법 근사한 모양이 되었다. 처음 베이컨말이를 맛본 가족들의 감탄은 이후로도 계속 다른 요리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요리사라도 된 듯 신이 난 나는 완성된 사진을 찍어 이월드에 올렸다. 처음 만드느라 요령이 없어서 삐뚤빼뚤한 베이컨말이였지만 그때만 해도 베이컨말이가 흔하지 않았던 때라 친구들은 맛과 레시피를 궁금해했다. 그 이후 <베이컨을 팔지 않는 어느 시골에 위치한> 친구의 신혼집에서 베이컨을 대신한 삼겹살로 채소를 곱게 말아서 만들어 먹었던 추억이 있다.



베이컨 말이는 긴 시간 우리 집 역사와 함께한 메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베이컨말이와 불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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