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회식이 있는 날이다. 다름 아닌 '가족 회식'. 언니가 저녁 먹자는 지인의 부탁을 "오늘은 동생이랑 회식 있어요."라는 말로 거절한 이후 금요일 저녁은 암묵적인 '가족회식의 날'이 되었다.
아빠가 계실 땐 퇴근길 식당에 들러 안주거리가 될만한 이런저런 음식들을 포장해 왔다. 날 것을 좋아하는 가족들이라 생선회나 육회가 주된 메뉴였고 가끔은 족발이나 통닭 같은 것들을 먹기도 했다.
가끔씩 "아빠, 딸들이랑 한잔 하는 게 더 좋지?"하고 물으면 아빠는 이제는 집에서 마시는 술이 훨씬 편하고 더 좋다고 하셨다. 실제로 우리와 함께 가족회식을 하면서 모임에서 술을 거의 드시지 않으셨고, 금요일을 은근히 기대하시는 눈치였다.
"이번주는 메뉴가 뭐냐."
수요일이나 목요일 저녁이면 늘 메뉴를 먼저 물어보셨다. 우리는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이번 금요일은 뭘 먹을까 하는 것이 행복한 고민거리였다.
아빠는 소주를 좋아했지만, 우리는 와인을 고집해서 '소외되기 싫은 아빠'는 와인도 좋다 하셨다.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고 늘 건배를 하고 마셨다. 아빠가 없는 지금, 우리는 와인보다 소주가 더 달다 느낀다.
그렇게 서로의 잔에 술이 더 많다 적다 유치한 장난도 하고 시시콜콜한 옛이야기를 나눈다. 주제는 대체로 아빠에 대한 고마움, 노고 치하(!) 등 다양하다. 갑자기 서로 악수를 하기도 하고, 주먹을 쥐고 맞대면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살자고 결의를 다지곤 했다.
"이런 게 행복인 거야."아빠는 일상의 소소한 모든 것들에서 늘 똑같은 결론을 말한다. 함께 팔짱을 걷고 산책을 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소한 문자 하나로도 아빠의 <이런 게 곧 행복이다>라는 말이 뒤 따랐다. 우리는 그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늦게서야 깨닫는다. 이제는 아빠가 아니라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되었다.
아빠가 없는 지금도 금요일 저녁, 여전히 회식을 한다. 이번 메뉴는 베이컨말이와 마트에서 산 불막창에 대파를 잔뜩 추가했다. 먹고 보니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불닭발까지 소환. 오븐에 구운 고구마까지 배불리 먹었다.
베이컨말이는 대학교를 갓졸업하고 한창 요리에 재미를 느낄 때 만들었던 메뉴다. 나는 아빠가 매운 음식을 못 드시는 것이 늘 아쉬워서 따로 양념을 하지 않아도 모양이 그럴듯해 보이는 메뉴들을 선별해 만들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있었다.
늘 구워서 밥 위에 얹어먹기만 했던 베이컨에 다양한 채소들을 채 썰어 말아주니 손재주가 특별하지 않아도 제법 근사한 모양이 되었다. 처음 베이컨말이를 맛본 가족들의 감탄은 이후로도 계속 다른 요리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요리사라도 된 듯 신이 난 나는 완성된 사진을 찍어 싸이월드에 올렸다. 처음 만드느라 요령이 없어서 삐뚤빼뚤한 베이컨말이였지만 그때만 해도 베이컨말이가 흔하지 않았던 때라 친구들은 맛과 레시피를 궁금해했다. 그 이후 <베이컨을 팔지 않는 어느 시골에 위치한> 친구의 신혼집에서 베이컨을 대신한 삼겹살로 채소를 곱게 말아서 만들어 먹었던 추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