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지 않는 '만두'

뒤늦은 만두예찬

by 카타

"신혼 때 네 엄마가 만두를 많이 빚어서 거의 매일 먹었지."

"퇴근해서 우리 아기 뭐 먹었어? 물으면 네 언니가 <만두 먹었어요. 만두 맛있어요.> 그랬지."


없는 살림에 식비도 마땅치 않던 신혼시절, 한꺼번에 만두를 빚어서 매일 먹었다는 이야기는 횟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듣던 아버지의 독백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만두에 대한 아빠의 추억이자, 내가 태어나기 전 우리 가족이 셋이었던 시간 속의 이야기이다.


셋이었던 살림은 넷이 되었다. 더 이상 집에서 만두를 빚지 않고 특별히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지만 아빠에게 만두란 녀석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한결같이 애틋하다. 첫딸도 자라고, 둘째 딸도 태어났지만 만두만은 자라지 않았다. 만두의 위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해서 아빠는 시시때때로 만두와의 추억을 소환했다. 전통시장에서 갓 나온 뜨끈뜨끈한 만두를 보았을 때, 대형마트에서 각양각색의 냉동만두를 마주했을 때, 집 근처 새로 생긴 만두집 앞에서도 아버지는 만두를 빚어 먹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늘어놓는다.


아버지는 그렇게 만두에 추억을 담았다.






텔레비전을 보던 아빠가 우리를 큰소리를 부른다.

"이리 와서 저것 좀 봐라. 만두 광고한다. 저거 살 수 있냐?"

언니는 잘 메모해 두었다가 아빠가 요청한 만두를 검색해 주문한다. 만두뿐만이 아니다. 만두와 외모가 꼭 닮은 '찐빵'만 보아도 아빠의 얼굴빛이 환해진다.


집 근처 슈퍼나 편의점 온장고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 호빵을 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유독 따뜻하다.

"호빵도 판다!"

구태여 사 먹지 않아도 호빵의 안부는 꼭 확인하는 아빠.


냉면집에선 메인메뉴가 냉면인 것이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늘 조연이었던 만두가 아버지의 관심 대상이다.

"그 집 만두 잘하더라. 만두가 맛있더라고."

냉면까지는 모르겠고 만두만은 분명 맛있어야 우리가 자주 가는 단골가게가 되었다. 애초에 냉면이란 녀석은 메뉴판에 존재한 적이 없는 녀석처럼 맛에 대한 평가도 길지 않다. 먹을만하다는 총평이면 충분한 것 것이다. 그러나 만두에 대한 총평은 늘 섬세하다. 어쩌면 '함흥냉면'이 아니라 '함흥만두'였더라면 아빠에게 훨씬 더 후한 점수를 받았을지 모를 일. '평양냉면'이 만약에, '평양만두'였더라면..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만두예찬을 펼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 자매는 뜬금없이 만두와 뒤늦은 사랑에 빠졌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늘 만두를 검색해 보고, 새로 출시된 만두는 꼭 먹어야 봐야 할 것만 같다. 그렇게 시행착오 끝, 처음 먹어보는 형태의 특이하고 맛있는 만두를 발견하면 세상 편하고 좋아졌다며 진심으로 감탄하는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빠가 정말 좋아했을 텐데, 이 좋음을 함께 나누고 누구보다 더 감탄해 줄 아빠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빠와 함께였을 땐 별스럽지 않은 만두였을 뿐이었는데.


"요즘 갑자기 만두가 좋아졌어."

그냥 있으니까 먹었던 음식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만두가 좋아졌다는 뜬금없는 언니의 고백에 나는 어땠었나 다시 한번 생각 보게 된다. 그냥 있으면 맛있게 먹는 음식이었지만 애써 찾지는 않는 음식, 만두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언니와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결론이라고 우겨 본다. 아주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듣던 아버지의 만두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아버지가 만두를 통해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했듯 우리는 만두와 마주치는 매 순간마다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뒤늦은 우리의 만두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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