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의 '해장국'

술보다 해장국

by 카타


아빠는 새벽마다 운동을 하거나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평일에는 주변 지인들과 새벽에 테니스를 쳤고, 주말에는 우리를 데리고 근처 호수나 녹지로 산책을 갔다.


방학이 되면 언니와 나는 아빠의 운동길에 따라나섰다. 훌라후프를 하거나 근처 동네주민인 강아지들과 뛰어놀거나, 풀밭의 네잎클로버를 찾고 곤충을 가지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던 시절. 아무것 없이도 둘이 함께 있으면 마냥 즐겁게 놀 수 있던 날의 기억이다.


어린 나이에도 새벽공기를 쐬러 일찍 일어나는 것은 왠지 근사하게 느껴졌다. 살짝 어른이 된 기분도 들고, 무엇보다 방학 전에 짜두었던 생활계획표보다 더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혼자만의 만족감에 아침잠을 뿌리치고 아빠를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운동을 마친 후 우리를 차에 태워 드라이브 겸 가까운 야외로 향한다. 기분 좋은 바람을 쐬며 한참을 달리면 아빠의 단골 해장국 집이 나온다. 지금은 그곳이 어디인지 전혀 기억도 나지 않지 않지만. 혼자서 갈 만한 위치에 있는 곳이 아닌지라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언제 아침에 일찍 해장국 집에 한 번 가보자!"

아빠는 오래전부터 단골집에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그리고 곧 당신만의 해설이 이어진다. 너희에게 사주고 싶은 음식은 선지해장국인데 얼큰하고 맛있으며 선지란 녀석은 소의 피로 만들어진다, 소의 피를 어떻게 먹을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끓이면 단단하게 굳는다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답이 돌아왔다. 언어의 한계를 체감한 첫 번째 기억이 아닐까 싶다. 선지란 직접 먹어보는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설명이 불가능한 음식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는 머릿속에 그려보기를 포기하고 그냥 먹어보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뛰어난(!) 나는 해장국의 맛보다는 선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아빠의 단골집에 함께 들를 날을 기대했는데 마침내 그날이 왔다.


"해장국 주문한다! 먹을 수 있겠지?"

우리는 어릴 때도 매운 음식을 곧 잘 먹었던 터라 잘 먹을 수 있노라 자신 있게 대답했다. 곧 검은색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선지해장국 세 그릇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선지'란 녀석을 향한 호기심이 풀리는 감격의 순간. 숟가락으로 선지를 작게 떠서 입에 넣는다.


우리가 먹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는 아빠. 당신에게도 이 순간은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나 보다. 이른 새벽에 함께 할 해장국 집 메이트(동무)가 생기는 순간.


"먹을 만 해? 어때?"


우리는 음식에 대해선 아빠에게 투정을 부린 적이 없다. 일단 무조건 맛있다고 말하고 본다. 여느 날들과 마찬가지로 언니와 내가 참새처럼 맛있다고 짹짹한다.


"맛있지? 안 매워?" 맵지는 않은지 입맛엔 맞는지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아빠.

아빠의 얼굴은 해장국을 맛있게 먹는 어린 두 딸이 기특해서 기쁘고 흐뭇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유기 때부터 가리지 않고 어떤 음식이든 입에 넣어주기만 하면 오물오물 잘 먹었다는 나는 선지해장국이 입맛에 꽤 잘 맞았다. '선지'도 적당히 부드럽고 쫄깃해서 먹기에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색감에 꽤 예민한 아이였던지, 숟가락으로 작게 쪼개서 먹는 선지 내부의 색깔, 처음 보는 그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겉은 붉고 속은 어두운 녹색이라니. 맛있던 해장국이 갑자기 역하게 느껴졌다. 맛은 있으나 눈으로 보기엔 너무 힘든 녀석이었던 것이다. 슬쩍 옆을 보니 언니는 아무 생각 없이 너무나 맛있게 잘 먹고 있었다. 숟가락으로 선지를 쪼갤수록 안쪽의 녹색은 더 눈에 두드러졌다. 애써 그 색깔을 모른 척하고 해장국 한 그릇을 비웠다. 집에 와서 언니에게 슬쩍 이야기를 꺼냈더니 언니는 선지 안쪽 색깔이 진한 녹색인 줄도 몰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의 이런 아주 작은 고충을 눈치채지 못한 아빠는 이후로도 우리를 그 단골집에 자주 데리고 갔다. 우리의 잘 먹는 모습을 보고 기쁨이 넘친(!) 나머지 선지만 따로 주문을 하기도 했다. 추가 주문한 선지는 해장국이 담겨 나오는 뚝배기에 해장국보다 더 푸짐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물론 우리는 각각의 그릇에 가득 찬 해장국과 추가주문한 선지까지 깨끗이 비우고서야 해장국집을 나섰다.


해장국 집에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더 이상 선지의 색깔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럴 때도 있었네> 하는 추억이다. 시간은 그렇게 크고 작은 순간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포장해 우리에게 다시 건네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그 이른 새벽, 아버지가 우리를 데려갈 수 있는 음식점은 해장국집이 유일했다는 것. 어른이 되고 나서야 발견한 사실이다.






어른이 되면서 오히려 해장국 먹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더 이상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살지 않으니 아빠의 단골집은 의미가 없어졌다. 도시에서도 해장국은 흔하게 먹을 수 있지만 아버지는 해가 수록 좋아하던 음식들도 조금만 매운 기운이 있으면 잘 드실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한동안 우리는 해장국을 찾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 해장국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어제 술 먹었어?> 회사 점심때 해장국을 고른 나에게 돌아온 말이다. 누군가는 숙취해소를 위해 해장국을 찾는다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해장국은 단 한 번도 '술 먹고 다음 날 찾는 음식'인 적이 없다. 언니와 나는 술보다 해장국을 먼저 배웠으니, 우리에겐 애초에 술과 해장국은 별 상관관계가 없는 음식의 조합일 뿐이다. 오래된 각인이다. 생각해 보니 해장국을 안주 삼아 술 한잔 기울인 적도 없다. 하지만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다시 찾은 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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