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피자' 한 조각

클래식한 불고기피자

by 카타

1990년대, 그때의 언니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면 하얀 치즈가 길게 늘어나는 피자라고 답했을 것이다.


사실 제대로 된 피자의 맛을 알기 전에 우리가 빠져들었던 것은 식품회사에서 나온 냉동피자와 피자치즈였다. 모차렐라치즈는 피자 위에 올려진다는 이유로 우리에겐 그저 '피자치즈'로만 명명되었다.


언니와 나는 예나 지금이나 피자의 생명은 바로 이 모차렐라치즈에 있다고 생각한다. 쭈욱 쭉 늘어나는 치즈가 없는 피자라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릴 땐, 마트에서 냉동피자를 몇 개씩 냉동고에 얼려두고 찜기에 데워 먹곤 했다. 피자치즈는 그전까지 먹던 노란 치즈와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렇게 한참 냉동피자를 간식으로 먹을 때쯤 피자치즈도 시판이 되었다. 아아, 피자를 먹는 절대적인 이유가 이 치즈 덕분이었는데, 이제 이 신기한 치즈를 따로 먹을 수 있다니. 그런데 막상 우리가 마트에서 사 온 하얀 치즈는 기대와 다르게 뚝뚝 끊어지는 고무찰흙 같았다. 그날의 실망감과 배신감이란. 그러나 따뜻하게 데워지면 우리가 기대하는 치즈로 돌아온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언니는 그 무뚝뚝한 피자치즈를 가열하면 우리가 아는 피자치즈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식빵으로 피자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다. 식빵에 햄과 채소를 올린 후 케첩을 뿌리고, 피자치즈를 듬뿍 올려 찜통에 찌기 시작했다. 정말 치즈가 녹을까?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했던 시간. 우리는 찜통의 유리뚜껑에 맺힌 수증기 사이로 치즈가 녹아가고 있는지 애를 태웠다. 다행스럽게도 뚝뚝 끊어지던 치즈는 부드럽게 녹아서 식빵 위의 채소들을 감싸 안기 시작했다. 그때의 그 신기함이란. 수증기 때문에 빵이 축축해지기는 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피자치즈'를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반복하니 적당한 시점에 수증기의 피해를 입지 않고 맛있게 피자치즈를 녹일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다음번엔 응용력을 발휘서 김치를 썰어서 얹어 보기도 하고, 노란 치즈도 함께 넣어 식빵 피자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알록달록한 피자가 완성된다. 최대한 하얀 치즈를 듬뿍 올려 쭈욱 쭉 늘어나는 그 시간을 즐긴다.






식빵피자가 조금 시들해질 무렵, 부모님의 지인분을 통해서 수입산 피자를 살 기회를 얻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탈리아 피자였을 것이다. 외국어가 잔뜩 쓰여있는 상자 안에 비닐로 포장된 냉동피자가 들어 있었다. 우리가 사 먹었던 한국제품보다 한눈에 보아도 크기가 거대한 다른 느낌의 피자였다. 진짜 피자를 맛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찜기에 피자를 올렸다. 채소와 치즈는 거의 없고 고기만 잔뜩 올려져 있는 신기한 피자였다. 그리고 특유의 이상한 향이 났다.


기대와는 다르게 피자는 정말 맛이 없었다. 어린이였던 우리에겐 지나치게 어른의 맛이 느껴지는 이상한 맛의 피자. 우리는 먹기를 포기했고 결국 남은 피자는 음식 버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아버지가 드셨다. 우리가 먹다 남긴 피자를 가져가면서, 아빠는 나의 어린 날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당신이 자주 하던 말, <이게 진짜야.>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서양의 진짜 피자는 맛이 없다는 선입견을 안고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텔레비전 광고에서 유명프랜차이즈 피자 광고를 보게 되었다. "함께 즐겨요~"라는 음악과 함께, 주욱 늘어나는 피자치즈가 클로즈업되는 광고. 우리가 보기에 그 피자는 정말 완벽했다. 그때까지 판매하던 냉동피자와 다르게 두툼한 도우, 집에서 만든 식빵피자처럼 듬뿍 올린 피자치즈. 언니는 먹음직스러운 피자 광고에 감탄하면서 <우리 나중에 저거 꼭 아빠한테 사달라고 하자.>고 말한다. 나는 언니가 적극적으로 아빠에게 뭔가 사달라고 할 때가 좋았다. 가만히 있어도 묻어가는 철없는 동생이었다.






"다음에 아빠랑 저기에 피자 먹으러 가자."

아빠의 약속에 우리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두툼한 도우와 다양한 토핑, 하얗게 녹아내린 치즈,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했던 피자와 만났던 감격스러운 순간을 기억한다.


커다란 피자 한 판을 배부르게 먹고, 남은 조각을 작은 상자에 포장해서 집으로 오는 길, 빨간 리본을 묶은 상자가 그렇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던 날의 추억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예전처럼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음식들은 유독 과거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주 찾게 되는데 피자에겐 왠지 모르게 그런 감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인색하다. 아마도 어린 시절 최고의 순간을 안겨 주었던 피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느낌의 피자들을 만나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최고의 피자는 역시나 클래식한 불고기 피자다. 두툼한 도우, 피자치즈의 기름기가 살짝 넘실거리게 갓 구워진 아주 뜨거운 불고기 피자. '바삭'하며 부서지는 도우, 길게 늘어나는 모차렐라 치즈를 사이좋게 나눠 먹던 그때 그 추억의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다양한 피자와의 만남
피자도 세월의 힘입어 각양각색의 장식들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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