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창고

by 이면

"지독한 외로움이 뭔지, 언니가 알아?"


부릅뜬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동생의 눈빛은 지독한 외로움이 뭔지 알아서, 괴롭다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동생은 외로움이 가진 살기를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사람이었다. 잔혹한 경험들이 만들어낸 살기에 맞서, 동생은 몸을 후르륵 떨며 질문을 던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순간 숨이 멎었다. 그렇게까지 괴롭기 전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무기력하게 울부짖기 전에 한 번 더 안아줬었더라면 네가 덜 괴로웠을까 싶었다.


순간을 즐기는 것은 평온을 가져다준다. 깊은 호흡으로 현존할 때면 어김없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 찰나의 순간은 마치 비밀 같다. 그만큼 은은하고 순간적이라 자신은 느낄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그 행복의 순간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 우린 행운이라도 만난 듯 단번에 행복해진다. 내 동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할머니 집에 굴러다니던 수박 하나를 품에 꼭 끌어안고 세상 행복을 다 가진 얼굴을 하던 아이. 달리기 경주에서도 이기는 것보다 달리는 그 자체가 좋아 끝까지 웃으며 뛰던 아이. 일상을 좋아하고 좋아하는지, 작은 순간들로 충분히 기뻐하는 아이였다. 그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늘 함박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 동생에게 세상은 왜 그토록 가혹했을까.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3년까지. 동생은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학교폭력을 당했다. 동생이 22살이 되던 해, 완전히 무너졌다. '이번엔 다르겠지'라는 기대는 언제나 무너졌다. 어떤 마음으로 15년이 이상을 폭력 속에서 견뎠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함께 등교하고 싶던 마음, 비밀을 나누고 싶던 마음, 소풍에서 추억을 만들고 싶던 마음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폭탄이 되어 동생 몸 안에 쌓여갔다. 동생은 그 폭탄들은 누구에게도 던지지 못했고, 결국 그 모든 폭탄을 자신이 삼켜버렸다.


커튼 뒤에 작은 몸을 숨겼다 나타냈다 하며 ‘계란송’이 아니라 ‘겨란송’을 부르던 아이는 더 이상 없었다. '겨란이 아니라, 계란이야.'라고 하면, '겨란이야' 하며 싱긋 웃던 아이는 없었다. 다만 예고 없이 터지는 폭탄을 자기 몸으로 감싸 안는 법만 배운 아이가 있었다. 삼켜버린 폭탄들은 결국 안에서 터졌고, 그 아이는 아프다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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