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하자, 나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했다.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 사회복지학만이 아니라 심리학이라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는 방학이면 가볍게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다는 것도 알았다. 12년 동안 영어를 배웠지만 한마디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나와 달리, 영어로 토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가진 것들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 선택을 잘한 것이 맞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나는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 특히 가족에 대해서는 더 그랬다. 그래서 숨겼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으로, 아빠는 대학교 건물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택시기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바꾸어 말했다. 나는 스스로를 ‘엄마에게 학대를 당한 사람’으로 규정했고, 아빠는 ‘사업가’로 만들어냈다.
심리학에는 ‘인지편향(cognitive bias)’이라는 개념이 있다. Cambridge Dictionary에 따르면, 이는 현실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관점이 개입해 비합리적인 이해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의미한다. 나의 경우, 모호하게 겹쳐지는 기억과 감정 위에 불안을 덧씌우며 ‘가족 편향 서사’을 만들어냈다. 스무살에 청춘과 함께 피어난 불안을 견디기 위해, 나는 가족을 극단적으로 재구성했다. 하지만 이것도 내 과거 트라우마나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지금에야 객관화를 할 수 있는 거지, 아무것도 모르고, 외롭고, 불확실성에 불안하기만 하던 스무 살엔 그마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이었다. 왜 내 최선은 그토록 심리적으로 압도되었어야 했던 걸까, 씁쓸해질 때도 있었다.
내 안도 복잡해 죽겠는데, 아니, 어쩌면 그래서인지 인간관계에서 갈등도 종종 있었다. 흔한 인간관계 오해이기도 했고, 다듬어지지 못한 성격 탓에 주변사람을 밀어내기도 했다. 나 자신에게,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있을 때 나를 믿어주고 편이 들어주는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모두가 좋아했다. 그런 언니가 내 편이 되어주니 든든했다. 어느 날 언니가 말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얘기해.
내가 다 들어줄게.
정말 다 쏟아냈다. 어렸을 때 한이 맺혔던 이야기, 억울했던 이야기 등등, 가지각색 다방면으로 가족을 욕했다. 가족에 대한 원망과 실망을 그 언니에게만 말한 건 아니었다.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난 뒤 늘 기분이 언짢았다. 다들 같이 내 가족욕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은 내가 왜 이런 가족편향 서사를 만들러 내는지 몰랐다. 하지만 언니의 그 한마디로 내가 그동안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기나긴 내 푸념 끝에 언니가 한 말은 굉장히 단순했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 들었던 말들보다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너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
고생 많았어.
그 말을 듣고선 순간 모든 몸의 긴장이 풀리고, 숨통이 틔이는 것 같았다. 이후에도 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상처를 어떻게 다루는지, 내 편이 돼주는 것은 무엇인지, 신뢰는 어떻게 쌓는 건지 알아갔다. 그리고 어느 날 언니는 이 한마디로 내게 올곧은 사람이 되는 법도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한참 멍했다. 찰나에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이내 나는 내가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 인정해야 하는 말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근데 너희 엄마가 틀린 말 한 거 없어.
나라도 내 딸에게 그렇게 말해.
드디어 그동안 내 불안을 지탱해 주던, 가족 편향 서사를 끝낼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