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울타리

by 이면

우리는 구름이를 ‘안방 호랑이’라고 불렀다. 집에서는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밖에만 나가면 금세 움츠러들었다.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워서 “어디 내다 놓아도 부끄러운 구름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 구름이가 유일하게 눈치 보지 않고 드러눕는 외부 공간이 하나 있었다. 어김없이 몸을 비비며, 턱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배배 꼬아가며 냄새를 묻히곤 했다. 너무너무 좋으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드러누울 수 있구나 싶었다. 그 모습은 그저 참 사랑스럽기만 했다. 헤벌쭉 웃으며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달려오는 구름이. 언제나 내 품 속에 푹 담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꼭 껴안을 수 없었다. 다른 강아지 똥 냄새와 지렁이 비린내가 구름이 몸에서 진동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꼭 그 모습과 닮아 있었다. 더러운 상태의 나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선뜻 끌어안을 수는 없는 공간. 인생을 포기하고, 자학적이고, 예의 없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가족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건 삶을 살아가는데 옳지 않은 방법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가족은 내가 ‘냄새를 풍겨도 괜찮은’ 유일한 곳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가족이 울타리였다는 사실을 스무 살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울타리가 결코 완벽하게 단단하지는 않았다는 사실도 함께 받아들여야 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나는 늘 내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나 역시 잘못한 부분이 많았다. 부모님은 나를 싫어한다고만 믿었지만, 어쩌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동생 역시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던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혼란스러웠다. 복잡했고, 감정은 롤러코스터처럼 흔들렸다. 마치 새가 알에서 깨어 나오는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 알에서 깨어 나오는 동안 서로 사랑하더라도, 사랑이 표현되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는 그 사랑이 미움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족이 나를 열렬히 사랑하는 동안에,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 불협화음은 사랑하는 만큼 날카로운 소음을 만들어 냈다. 그 소리는 번개처럼 심장에 꽂혀 감정을 뒤엉키게 만들었다. 뒤엉킨 감정으로 감전된 심장은 '나'라는 사람까지 삐쭉빼쭉하게 만들었다. 알을 깨고 나온 뒤, 이 모든 감정이라는 밑동 아래 ‘사랑’이라는 뿌리가 내려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허무했다. 동시에 자유로웠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명확히 알게 되었을 때 드는 해방감이었던 걸까? 우리 모두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 아니라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이후, 그동안 내가 받은 사랑을 감각해 낼 수 있었다. 나의 가장 어둡고 무너진 모습을 보아도 내 곁에 있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은 언제나 곁에 있고, 그 사랑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과 성찰 덕분에 나는 꽤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20대 내내 사회불안을 겪었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나는 학교에서, 사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아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어떤 시선 속에 놓여 있는지 알고, 그 아이들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알기 때문이다.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에게 “너 사실 친구랑 잘 지내고 싶지?”라고 묻으면, 고개를 떨군 채 작게 끄덕이는 아이와 나는 연결될 수 있다. "저는 인생 망했어요. 공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청소년과 대화 끝에 외항사를 목표로 영어공부 하나만은 꾸준히 하자는 계획을 실천해 나가기도 했다. 놓으려고 하는 이들이, 동시에 무언가를 잡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를 미움받는 위치에 놓는 아이들이 잘하고 싶고,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을 알기에. 내 과거에 얽혀 있던 모든 사랑 덕분에, 나는 지금 사람에 대한 온기를 잃지 않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덕분에.


알면 사랑한다.
최재천 교수


물론 지나온 시간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여전히 사랑받지 못할까, 인정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 더 이상 잠식 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똥내를 풍겼던 사람으로 고정시키지 않기 위해, 내가 풍기는 온기와 사랑도 꽤 괜찮다는 것을 늘 상기한다. 나는 온기를 내어주는 사람이라고 인정한 뒤, 내 스스로가 안전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온기 또한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다. 어릴 적 가족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위화감은 사회에서 배제를 당하는 공포감과 흡사했다. 어릴 때 내가 아는 사회는 가족이 전부였으니까. 지금은 내 삶의 반경이 한국에서부터 독일까지 넓어졌다. 그동안 가족 울타리에서 경험하고 배운 사랑 덕분에 독일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듬뿍듬뿍 내 곁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친절한 동료들이 있고, 따뜻한 룸메이트들이 있고, 다정한 연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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