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숲의 곁에서
"나, 역시 여름이 좋아."
유난히도 시리던 손끝을 호호불며 이렇게 읊조렸던 지난 겨울날의 기억.
풀이고, 나무고, 전부 시들고 얼어버린 겨울날은
어쩐지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연의 여름을 모르던 시절 도시의 여름만 알던 그 시절엔 뜨겁기만 한 여름이 그리 달갑진 않았었다.
실내는 춥고, 밖은 뜨거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돼버리는 계절인것만 같았기에.
하지만 몇번인가 자연의 여름을 겪고 난 후에는,
여름이란 계절이 퍽 좋아지기 시작했다.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 없이도 나무그늘 아래 서늘한 공기를 즐기게 되었으며,
미세먼지 가득한 도심 속 몇 겹의 창문 속 꽁꽁 숨어 있을 필요도 없이, 야침에 드러누어 찬찬히 읽는 책이 더 재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여름, 그 계절 자체를 즐기게 된 것이다.
여름이니 더운 것이고,
여름이니 조금의 시원함도, 작은 그늘 한점도,
여느때보다 더 달디 달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여름은 이웃집 고양이처럼 어느샌가 내 곁에 머물러 있었고, 도시의 여름 속에서 지쳐가던 우리는 다시금 숲으로 향했다.
몇주만에 다시 찾은 숲속 캠핑장은 그새 여름의 기색이 완연했다.
그늘막 없이도 겹겹이 쌓인 나무들이 잔뜩 그늘을 내어준덕에, 안 그래도 느긋한 나의 움직임이 더 느릿해졌다.
이렇게 나무그늘 아래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구나.
후두둑, 하늘에서 작은 나뭇가지나 잣 열매가 떨어졌다.
뭐지? 하고 올려다본 나무엔 바삐 움직이는 청설모의 분주한 움직임이 보인다. 청설모가 지난 자리를 따라 고만고만한 나뭇가지들이 떨어져있다.
그러고보니 이대로라면 오늘 밤도 불멍이 가능하겠다.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아까 청설모가 떨어뜨려놓은 나뭇가지까지 야곰야곰 그러모아 오늘 밤을 준비해본다.
숲 속에서 가만가만 숲 이야기를 읽거나,
해먹에 누워 단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숲속의 일과는 여전히 심플하다.
길고 긴 오후의 늘어짐을 보내고, 푸르스름한 저녁과 함께 화로에 불을 지펴본다.
너무 크지도 않게, 너무 작지도 않게, 적당한 불길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로를 뒤적이다 문득, 나란 사람도 과하지 않은 적당함 속에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마침 적당한 서늘함과 적당한 온기가 어우러져 여름밤을 휘감는다.
일찍 잠든 듯, 어둑해진 옆 사이트의 이웃이 깰까봐
조용조용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에게 소곤댔다.
"나, 역시 여름이 좋아."
글 : 블리
www.instagram.com/bliee_
사진 : 빅초이
www.instagram.com/big.bigchoi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소로소로
www.soro-soro.com
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인 빅초이와 <시작은 브롬톤>을 쓴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