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두려울 때 대처법
회식.
그 단어만 들어도 벌써부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퇴근 후 자유롭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갑작스레 잡힌 회식 일정은 마치 미뤄둔 숙제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것처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오늘 봐야 할 OTT와 서두밖에 못 봤던 책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며 나에게 안녕을 고한다.
상사의 허접한 농담에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릿속에서 심한 토네이도가 회오리치고, 동료들과 어색한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막막하다.
심지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셔야 할지도 모른다는 내면의 압박까지 더해지면 총체적 난국이다.
회식이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사람 많은 자리가 부담스럽고 가면을 쓰고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운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회식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나만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회식이 두려운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실질적인 대처법을 나눠보고자 한다.
두려움의 시작
회식이 싫은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어색함과 강요된 분위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이미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남아있는 에너지를 소진했는데, 퇴근 후까지 그 연장을 해야 한다는 게 고역이었다.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의 첫 회식 날을 잊을 수 없다.
팀장님이 “다들 한 잔씩 돌려!”라고 외치며 술잔을 들었고, 나는 술을 좋아하지도 잘 마시지도 못했지만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따라주는 잔을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모이를 주듯 계속 받아 마셨다.
동료들은 시끌벅적 웃으며 공간이 바스러지듯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는 그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을 때웠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피곤에 절어있는 얼굴이 나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회식을 해야 할까?”
그 질문은 이후로도 매 회식마다 나를 온전히 따라다녔다.
회식이 두려운 건 단순히 먹기싫은 술이나 대화 때문만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과 억지로 친해져야 한다는 압박과 내가 원하지 않는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부담감.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이 아닌 가식적인 분위기가 싫었다.
상사의 농담에 과장되게 웃고, 관심 없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는 내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회식은 직장 생활의 일부였다.
피할 수 없다면 이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두려움과 마주하기
제일 먼저 깨달은 건 회식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의 뿌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회식을 싫어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강요받는 느낌.
둘째, 진심 없는 대화 속에서 가식적인 분위기와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
이 두 가지를 해결하려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했다.
회식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일지 몰라도,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는 내 선택이었다.
그래서 나만의 대처법을 찾았다.
첫 번째 대처법은 온전한 마음의 준비였다.
회식 일정이 잡히면 나는 미리 그날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은 그냥 2시간만 버티자. 내가 할 일은 웃고 고개 끄덕이면서 적당히 대화에 끼는 거야.”
이렇게 목표를 작게 잡으니 떨리던 부담이 줄었다.
회식을 무언가를 해야 하는 자리처럼 즐기려는 대신 그저 무사히 넘기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이 단순한 마음가짐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회식의 분위기에 동요되지 않고 완벽한 동료가 되려는 압박에서 벗어나니 어색한 분위기도 덜 무섭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나만의 경계 설정이었다.
술을 강요받는 게 두려웠다면 미리 내 한계를 정했다.
예를 들어 “저는 소주 세 잔이 최대예요”라고 미리 선언하거나
음료수를 들고 “오늘은 감기 때문에 약을 먹고 있어서 가볍게 갈게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연습을 했다.
처음엔 거절하는 게 어색했지만, 의외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선택을 존중했다.
심지어 투박한 상사도 “그래, 그럼 맛있는 안주라도 많이 먹어!”라며 넘어갔다.
경계를 설정하는 건 단순히 술을 거절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대화나 행동에 억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세 번째 대처법은 회식에서 작은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과 친해질 필요는 없었다.
30명쯤 되는 회식 자리에서, 단 한 명이라도 나와 취향이 맞는 사람을 찾는 걸 목표로 삼았다.
예를 들어 한 동료가 좋아하는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도 그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그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장면 진짜 충격적이었죠!” 같은 가벼운 공감이 대화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이렇게 한 명과 짧게라도 진심으로 연결되면 회식 전체가 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 방법은 특히 조용한 동료나 나처럼 회식을 어색해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효과적이었다.
한 번은 팀의 막내 동료가 구석에서 조용히 밥만 먹고 있는 걸 보고 말을 걸었다.
“회식 좀 어색하지 않아요?”라고 농담처럼 던졌더니 그도 웃으며 “진짜요, 저도 좀 부담스러워요”라고 답했다. 그 짧은 대화가 우리를 묘하게 가까워지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동료도 나처럼 회식을 두려워했던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가끔 점심을 같이 먹으며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지가 됐다.
회식을 두려워했던 나는 점차 회식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회식은 여전히 완벽히 즐거운 자리는 아니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고, 심지어 조금씩 버틸 수 있는 작은 순간을 만들어냈다.
회식은 여전히 나에게 마주하기 싫은 자리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이 나를 완전히 압도하지 않는다.
마음의 준비와 경계 설정 그리고 작은 연결고리의 대처법은 회식을 그저 '버텨야 하는 시간'에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꿔줬다.
무엇보다도 회식을 통해 사람들과의 작은 친밀감이 주는 따뜻함을 알게 됐다.
그 동료의 공감 어린 마음이나 변덕적인 상사의 의외로 인간적인 면모들 그리고 내가 조금씩 용기를 낼 때마다 커지는 자신감이 자리 잡았다.
회식이 두려운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그 두려움은 잘못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 덕분에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법을 배운다.
완벽히 즐기지 않아도 괜찮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무심하게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회식은 언젠가 끝나고 당신은 또 한 번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회식은 어쩌면 조금 덜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를 뒤에서 조용히 두손모아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