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통역 되나요?

"여보, 나 떡볶이!"라는 말은 "사랑해"의 가장 난해한 번역이다

by 젠틀LEE





요즘 아내와 함께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본다.


드라마는 다국어를 구사하는 통역사와 세계적인 톱스타의 이야기를 다룬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남녀가 소통하며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사실 빼빼로처럼 빽빽하게 줄을 서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문법이다.


하지만 이 뻔한 설정이 묘하게 시선을 끄는 건, 우리가 '말'을 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전달하지 못하는 먹통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에게 유창하게 외국어를 통역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감정은 오역하기 일쑤다.


문득 지난번 참석했던 북콘서트의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소나무의 진액을 사랑에 비유하며 그것은 너무 끈적거리지도, 너무 달라붙지도 않는 '공기'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서로에게 공기가 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끈적한 진액처럼 엉겨 붙거나 아예 메말라 버리기 십상이다.


언어는 생각보다 무력하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행간을 읽어내지 못하면, 외국어를 잘하는 통역사라도 상대방의 진심 앞에서는 길을 잃은 초등학생처럼 가방만 부둥켜안고 있게 되는 법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소통의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을 보며, 나는 자꾸만 우리 집 주방을 떠올린다.




우리 부부에게도 치명적인 '언어 장벽'이 하나 있다.

바로 '요리'라는 언어다.

아내는 이 분야에서만큼은 철저한 이방인이다.


레시피라는 가이드를 줘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음식은 늘 '제3의 맛'으로 번역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아내가 나에게 던지는, 가장 해독하기 어려운 문장이 있다.

"오빠, 오늘 저녁엔 김치찌개랑 떡볶이 해줄 거야?"


그녀의 소울푸드는 언제나 떡볶이고, 그 파트너는 늘 김치찌개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 이 두 음식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메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내가 시도하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궁금해서 물었다.

"여보, 밖에서 사 먹는 게 더 맛있지 않아? 아니면 당신이 한 번 도전해 보는 건 어때?"


아내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는 오빠가 해주는 그 맛이 좋아. 그게 진짜 내 입맛에 '길들여진' 맛이거든."


그때 깨달았다.

아내에게 "김치찌개랑 떡볶이 해달라"는 말은 단순히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 요즘 힘들고 지쳤어. 오빠가 만든 익숙하고 따뜻한 맛으로 나를 좀 위로해 줘"라는 아주 긴 문장의 압축 본이었다.


드라마 속 통역사가 단어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듯, 나는 가스불 앞에 서서 아내의 '마음'을 통역하기 시작한다.

멸치 육수를 진하게 우려내는 시간은 아내와 하루를 얘기하며 짜증을 묵묵히 들어주는 시간이고, 떡볶이에 설탕 한 큰술을 더 넣는 건 오늘 하루 아내가 겪었을 힘든 시간을 달콤함으로 덮어주는 과정이다.


아내는 요리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나라는 '요리 통역사'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글보글 떡볶이를 식탁에 올리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떡보가 되어 떡을 오물거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드라마의 한 장면이 스친다.


"가장 완벽한 통역은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정확한 타이밍에 해주는 것."


나에게 그것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당도와 맵기로 조절된 떡볶이 국물 한 숟가락이었다.


"여보, 떡볶이 떡 좀 더 넣었어. 당신 오늘 고생했으니까."


"와! 역시 오빠가 내 마음을 제일 잘 통역하네."


말랑말랑한 떡 하나를 집어 내 입에 넣어주는 아내를 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서로가 언제 배고픈지 언제 위로가 필요한지는 기막히게 번역해내고 있다고.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듯, 나도 이제 아내의 '요리 요청'을 완벽하게 의역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의 "김치찌개 해줘"는 "오늘 하루도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라는 뜻이고, "떡볶이 먹고 싶어"는 "지금 당장 당신의 다정함으로 지친 나를 위로해 줘"라는 뜻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통역사가 되었지만, 냄비 속에서 찰떡처럼 어우러지는 떡과 어묵을 보며 미소 짓는다.


우리의 사랑은 화려한 코스 요리는 아니지만, 칼칼한 김치찌개와 쫀득한 떡볶이처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아주 잘 통역된 진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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