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yoming
눈을 뜨자마자 오직 본능으로 움직이는 좀비처럼 머릿속에 커피와 샌드위치만 넣고 카페로 쫓아갔다. 오전 7시 45분, 이미 커피숍은 붐볐고 샌드위치는 솔드아웃이었다.
티브이만 틀면 나오는 익숙한 나라, 도미노피자, 맥도널드, KFC 등 갖가지 맛있는 프랜차이즈들을 우리나라에 퍼트린 나라, 그런 미국이 내게 먼 나라로 느껴진 건 의외로 음식 때문이었다.
피자, 버거 먹을 때마다 아주 맛있는 음식이지만 적정체중 유지에 해롭단 생각에 한국에서는 거의 찾지 않는 음식이다.
처음엔 여긴 미국이란 핑계로 맛있게 먹었지만 미국에서 먹는 피자 버거 역시 나를 살찌우는 건 마찬가지다. 스테이크는 탄수화물을 빼고 먹으면 충분한 과학적 근거로 살 안 찌는 음식이 되어 그나마 허용이 되지만 내 지갑도 함께 다이어트가 된다는 게 결정적인 단점이다.
미국인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고칼로리식품, 설탕, 트랜스지방 등등 몸에 해로운 것만 골라 먹는 건지, 샐러드팩을 파는 곳이 없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면서 미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오직 중국뿐 아시아마트를 어렵게 찾아가도 온통 중국음식이고, 정말 이럴 줄 몰랐는데, 한식 또는 한식재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미국에 오기 전엔 외모로 동양인과 서양인을 구분했었다. 미국에 다녀온 후엔 서양인 중에서도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WHO에서 정한 비만을 구분하는 기준이 우리나라에 비해 느슨한 것은 미국에 와서 보니 (다른 서양인들보다) 그들의 덩치가 큰 몫을 하고 있음이 믿어졌다.
건강하게 명대로 살고 싶다면 그들에게 한식이 적극 추천될만한데,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음식사업으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동안 미국에서 한식을 먹기가 이렇게 힘든 건, 미국과 한국의 갑과 (을도 아니고) 병이나 정 정도 되는 관계 때문이란 생각에 입맛이 다 씁쓸하다.
미국에 온 이후 식사메뉴와 나의 죄책감 사이에서 왔다리 갔다리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옐로우스톤에선 죄책감을 덜어주는 음식이고 나발이고 식당 영업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그마저도 먹을 수 없었다.
밤 새 굶주리다 진수성찬을 바란 것도 아니고 고작 샌드위치 하나 먹겠다고 달려갔는데,
아, 정말 신 이시어!!
샌드위치 대신 머핀을 사면 로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도넛쿠키 같은 신세가 되려나 내 차례를 기다리며 고민했다. 우리나라에선 먹을지 안 먹을지 모르겠는 음식은 안 사는 게 맞지만, 미국에선 확실히 먹지 않을 음식이 아니라면 일단 쟁여두는 게 맞다는 걸 뼈 때리게 느꼈다.
아메리카노 두 잔과 블루베리 머핀 한 개를 주문하고 카페 직원이 내 이름을 부르길 기다렸다.
우리나라엔 작명소라는 곳이 있고,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가 부귀영화를 누릴 이름을 지어주는 게 그곳의 존재 이유이듯 이름에 운명을 부여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름을 지을 때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그렇게 지은 이름대신 번호로 불린다.
카페직원이 나를 호명하기 전 우리나라에선 개에게나 붙여줄 것 같은 수많은 이름들이 내 이름 앞을 지나갔다. 동명이인도 많은지 동시에 여러 명이 반응하기도 했다. 같은 메뉴를 시켰다면 먼저 나온 음식이 누구의 것인지 대략 난감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 몇 가지 안 되는 심플한 메뉴 구성에도 서로 다른 메뉴를 시켰던 것인지, 아니면 서로서로 양보하며 원만하게 해결을 보는 것인지 분란이 생기거나 하진 않았다.
어쨌든 이름보단 번호를 부르는 게 합리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대충 지은 이름을 알뜰하게 써먹었다.
내 이름이 뭔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누군가에게 내 이름이 불리어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 어쩌면 부귀영화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들에게 더 소중한가 보다.
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블루베리 머핀은 환상의 맛이었다. 마지막 한 입을 남편과 서로 먹으라고 양보하며 두 개를 살걸 후회했다.
미국에선 손이 커야 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와이오밍의 7월은 긴팔을 입었음에도 추위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로어 폭포로 향하며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남편의 팔에 내 팔을 꽉 끼워 매달리듯 걸었다. 폭포는 무조건 사이즈인데, 저 멀리 작게 보이는 폭포의 모습은 추위를 참으며 걸었던 노력에 비해 보잘것이 없었다.
"전망대가 뭐 이리 머노? 폭포구경하다가 쓸려갈까 봐 그러나?"
"자기야 저기도 전망대가 있다. 저기도, 저~기도, 폭포바로 옆에도!"
오 학년이 되면서 이따금씩 돋보기가 필요하다는 남편이 그 멀리 있는 것들을 용케도 봤다.
가랑비에 옷 젖듯 남편이 늙어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내 심장은 아릿하게 아파왔지만 막상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마치, 나 역시, 나 늙는 건 생각 못하고 남편걱정을 하는 것처럼.
남편이 가리키는 곳을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보니 고릿적시절 가끔 해봤던 스타크래프트의 테란이든 저그든 뭐든 기지를 건설하는 일꾼 유닛의 움직임처럼 폭포옆 전망대에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리로 가자."
"어떻게? 저기가 어딘 줄 알고? 네비에 목적지를 뭐라고 입력할 건데?"
남편은 미리 다운로드하여 온 오프라인 구글지도를 열고(옐로우스톤뿐 아니라 미국에선 인터넷이 먹통이다.), 협곡의 형태와 지도를 비교하더니 그 전망대를 찾아내었다.
"이리로 가면 되긋다."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는 것도 못하고, 백화점에서 나 없음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길치 남편은 희한하게 지도만 있으면 인간내비게이션이 되었다.
2022년 뉴질랜드 여행을 했었는데, 우리는 나니아 연대기 전쟁장면을 촬영한 곳을 찾아가고 싶었다. 그곳은 관광지가 아니어서 현지에 있는 여행 정보 센터에서도 모르는 장소였다. 우리가 가진 정보는 축척이 작아서 대로가 아닌 작은 길은 모두 생략된 지도와 그 위에 찍힌 점뿐이었는데, 남편은 주소도 없이 오직 그 점하나로 그곳을 정확하게 찾아냈다. 사진에서 본 그 바위가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난 풍경이 아니라 남편에게 감격했었다.
'이 미스터리한 XX! 닌 내끼야!'
옐로우스톤 그랜드캐년 로어폭포, 무섭게 쏟아지는 옥색 강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은 추운 날씨에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무자식이라 상팔자인(물론 옐로우스톤의 버펄로 에겐 졌지만) 나에게도 뭔가 해소할 게 있었는지 개운하게 스트레스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