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ana

Montana

by blingzoomma
드디어 신께서 배고프다 울부짖는 나의 절규에 밥으로 화답하셨다.


사방에 맛집 냄새를 퍼트리는 배식대에 차려진 나의 선택지들을 쭉 둘러보았다. 중국인지 동남아인지 출신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오늘 점심은 버거가 아닌 쌀로 된 밥이다.


'너거 초코파이가 한 입에 들어가는 거 봤나? 남자든 여자든, 예쁘든 말든 극한에 부딪히면 똑같다. 사람 아니고 다 동물이다.'


한 숟가락 가득 퍼담은 밥을 찢어져라 벌린 입에다 욱여넣을 때 갑자기 대학 동아리 동기가 20년도 더 전에 했던 말이 어제 들은 것처럼 생생하게 생각났다.


입대하여 여군하사 교육생 조교로 근무했었던 동기는 여자에 대한 신비감도 기대도 없다고 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남자답게 생긴 얼굴로 연애는 시간낭비 돈낭비라며 아가씨 여럿 울릴 소릴 하더니 얼마 후 그의 여자친구가 외국인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그는 다시 싱글이 되었는데, 외국한번 나가보지 않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갑자기 그 친구가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모습을 봤다면 눈살을 찌푸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다행히 내 앞엔 자기 접시에 있던 고기를 내 접시에 올려주며 나와 함께 입을 크게 벌리고 볶음밥을 밀어 넣는 남편이 앉아있었고,

볼이 터질 듯 불룩해진 서로를 바라보며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맘모스 핫 스프링에 가려면 2시간가량 운전을 해서 산을 넘어야 했다. 맘모스 핫 스프링을 끝으로 옐로우스톤 북쪽 게이트로 나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산을 넘으면 경이로웠던 모습들은 내게 기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때문인지 멀리 망원경으로 봐야 하는 (어제는 길펄로였던) 버펄로의 느릿한 몸짓에 눈을 떼지 못하고 도로에서 만난 뿔도 없는 사슴무리에 환호했다.


심지어 우리는 아침에 본 로어폭포의 규모에 비해 하찮은 사이즈의 폭포 앞에서 등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 동안, 그 쏟아지는 물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응시했다. 마치 그 폭포가 옐로스톤과 우리를 이어주는 실낱같은 끈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끈을 놓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마지막이란 사실, 앞으로는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나쁜 기억은 흐릿하게 하고 좋았던 것들은 더욱 증폭시켰다.


그럼에도 맘모스 핫 스프링의 모습은 전성기 땐 천국만큼 아름다웠을 거란 흔적만 있을 뿐 현재는 계단식으로 굳어진 시멘트에 갈색이끼가 낀 형상이랄까....

한땐 저 계단식 석회질 웅덩이는 더욱 새하얬을 거고 그 새하얀 웅덩이마다 하늘색의 투명한 온천수를 머금고 있었겠지.


'사진에선 층층이 하늘을 담고 있던 새하얀 웅덩이들이 그냥 텅 빈 시멘트 구덩이었다.'

오래전에 읽은 누군가의 파묵칼레에 대한 블로그 내용이다. 그 분과 문장의 표현이 다를 수 있지만 요점은 튀르키에 파묵칼레에 갔더니 기대와 너무 달라서 상당히 실망했었다는 내용이었다.


맘모스 핫 스프링을 보며 파묵칼레가 어떤 모습일지 알 것 같았다.




자잘한 크기였지만 우박이 그친 뒤 더욱 추워져 혹시나 하며 가져왔던 털카디건을 꺼내 입어도 윗니 아랫니가 나의 의지와는 달리 딱딱딱 부딪혔다. 차를 타고 가자고 남편을 여러 번 설득했지만 걸으며 동네구경을 하자는 남편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해가 있었다면 우리의 그림자는 샴쌍둥이가 될 만큼 꼭 붙어서, 코를 킁킁거리며 개울을 넘어온 불냄새를 따라, 다리를 건너 식당을 향해 걸었다.


그제, 어제, 불쌍했던 저녁 메뉴에 대한 보상으로 오늘 저녁메뉴는 만장일치로 스테이크 플렉스였다.


오들오들 떨며 식당에 서둘러 들어갔기 때문에 식당의 외관은 어떤 모습인지 모르지만, 나무 기둥, 나무 천장 그리고 나무로 된 대들보와 보, 거기에 매달려 있는 사슴뿔들, 카우보이 사진, 소품, 몬테나 감성을 물씬 풍기는 식당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분위기 완전 미칫다. 와인 한 잔 가지고 안되긋는데, 두 잔씩 4잔 마시는 거보다 차라리 병으로 주문하자."


그때 나를 홀린 게 분위긴지 남편인지 모르겠지만 우린 와인 한 병과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그 레스토랑에 지불한 18만 원은 그 가격을 소리 내어 발음해주고 싶을 만큼 짜증 나는 돈지랄이었다.

식당밖에 진동하는 불냄새의 출처는 무엇인지 불맛, 감칠맛, 부드러운 맛 하나 없는 퍽퍽한 소고기는 반이나 넘게 남겨졌고, 그에 따라 와인도 병째 들고 나왔다.


와인병을 끌어안고 남편의 팔에 둘러싸여 숙소로 돌아가며 달달달 떨리는 입으로 남편에게 걷자고 한 것, 병와인을 주문한 것, 그리고 맛없는 스테이크에 대한 원망의 폭격을 쏟아부었다.


"내내내일 라스베베베거스 가는 배뱅기 타야 하는데 와인 이거 우우우짤 거고? 코르크 마개 한 번 뺏던 거라서, 트렁크 안에서 와인 새면 재재난이다 대난."


옐로우스톤에서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샀지만 먹지 않고 식탁 위에서, 가방 안에서 뒹굴러 다니던 그 도넛쿠키를 안주삼아 모텔룸에서 와인을 다시 오픈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몸에 해로운 술을 마셨고,

그것만 한 똥술은 없었다.

몬테나의 밤은 깊어지고.....

온기라곤 없는 까슬거리는 빳빳한 면이불 안 역시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 와중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날 살인더위가 두려웠다.


체온으로 이불을 데우려고 몸을 바짝 웅크렸고 어느새 서늘하고 상쾌한 몬테나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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