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Yellowstone.

Wyoming

by blingzoomma

미국여행을 마치고 2주 후, 일상으로 돌아와 과연 내가 미국에 갔던 적이 있긴 했었나, 한바탕 꿈을 꾸었던 것이었나 싶을 때 즈음 옐로우스톤 사파이어풀이 터졌다는 뉴스를 보았다. 밀도 높은 시커먼 연기가 느닷없이 뿜어져 나와 사람들을 덮치는 장면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그 누구도 다치거나 사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속이 훤히 보이는 맑고 영롱한 푸른색 풀은 그저 잠잠하니 안녕해 보였었는데, 그때 이미 조금씩 상승하는 물의 온도를 느끼며, 스스로에게 생길 일을 예감하며 홀로 두려워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폭발은 사파이어풀에게도 갑작스러운 사태였을까?


내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그랬듯이 내가 죽은 후에도 쭉 영롱할 줄 알았던 사파이어풀이 이젠 이름만 남았다는 사실에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새삼 느끼며 서글퍼졌다.




저 멀리, 개미 사이즈의 사람들이 수 km로 보이는 거리를 일개미가 줄지어 기듯 걷고 있었다. 뭔가 상당한 볼거리가 있다는 징후다.


옐로우스톤은 몰려있는 사람들이 표지판이다.


우린 두 시간의 강행군 후 Biscuit Basin까지 둘러본 후라 저 길 끝에 천국이 있다 해도 걸을 힘이 없었다. 그렇게 패~쓰! 를 외치고 운전해서 코 앞까지 갈 수 있는 포인트 Mid way Geyser Basin에 도착했다.


'음 넌 에메랄드군.'

아침부터 계속 봐온 형형색색의 풀들이 하루도 안 돼 식상해지며 신비롭게 우아한 에메랄드빛 풀을 감흥 없이 지나쳤을 때 특수효과처럼 무수히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거대한 무지개가 나타났다.


Grand Prismatic Spring, 좀 전의 긴 행렬은 그 거대한 무지개를 높은 곳에서 한눈에 담기 위함이었다.

옐로우스톤 이꼬르 모닝글로리라는 말은 뭘 모르는 소리였고, 사실 옐로우스톤의 하이라이트는 파란색이 초록이 될 듯하다 노랑을 거쳐 주황색이 되는 원형 스펙트럼 스프링을 위에서 온전히 내려다볼 수 있는 그곳이었다.


아는 것과 체력은 하고자 하는 의욕이며, 과정을 견뎌내는 힘이다.


"지금이라도 아까 그 사람들 따라 걸을래?"

"아니. 가까이서 봤으면 됐다."

누가 묻고 누가 답했는진 중요하지 않다. 그때 우린 오랜만에 일심동체였으니.


때론 아는 것이 힘일 때도 있고,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무지개를 토대로 우리가 그 행군 끝에 보게 될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지성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그것이 의욕이 되고 힘이 되어 걷다 죽더라도 걸었을 것이다. 만약 지성이 부족해서든, 체력이 부족해서든 우리가 놓친 게 있다면 지금도 모르는 게 차라리 좋을 텐데, 'This is THE Yellowstone'을 쓰며 그때 우리가 포기한 것이 뭐였는지 이제야 궁금해졌고, 인터넷을 뒤적거렸고, 그때 우리의 무지가, 방전되었던 체력이 지금 이 순간부터 한으로 남았다.





버펄로 한 마리가 도로를 굼뜨게 가로지르며 교통체증이 생겼다.

가는 곳마다 서프라이즈를 선사받으며 버펄로도 길펄로가 되어가고, 갖가지 색의 풀과 스프링들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때 이번엔 장밋빛 볼연지색의 페인티드 팟이 앙증맞은 버블들을 보글거리며 퐁뒤처럼 끓고 있었다. 혹시 이 세상에 사랑의 묘약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사랑스러운 로즈빛의 녹진한 액체가 끓는점에서 생기발랄하게 방울방울 터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그리고 오늘 핸드폰 깊숙이 있던 그 동영상을 꺼내보고 내 똥손이 그 사랑스러운 색감을 머드색으로 죽여버렸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Fountain Paint Pot이 오래도록 예쁘게 끓기를 바래본다.




"오빠! 매점은 아직 문 열었다." 식당은 전부 닫았단 의미다.

매점이라도 이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기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점원이 말했다.

"10분 뒤에 영업종료합니다."

'10분은 무슨 5분이면 충분하지.'


오만가지 스낵, 초콜릿, 사탕, 쿠키, 젤리들 사이를 10분 동안 헤매고 다니다가, 우리가 저녁거리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산 것은 도넛이란 제목이 붙은 쿠키였다.


전자레인지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룸에 전기주전자도 없는 건 버거세트에 감자튀김대신 스윙칩을 제공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돈독이 바짝 오른 이들이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어보겠다는 전략인가? 아니면 쉬는 곳에선 쉬기만 하는 공간구분이 확실한 미국 문화인 건가?


아무튼 취사 비슷한 건 아예 불가능하게 장식된 로지, 당연히 인스턴트, 레토르트 음식 안되고, 칼퇴근해야 하니깐 당일판매해야 하는 샌드위치 안되고 따라서 매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음식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젝슨마트에서 서로배려하고 심통 부리지 않았다면 우리의 저녁식탁은 좀 달랐으려나.'


조댕이에 바코트리더기가 달린 미식가 남편과, 맛없는 음식을 먹고 살찌기 싫은 365일 다이어터인 난, 우리는 그 도넛이라고 적혀있는 쿠키로 저녁을 해결하기 싫었다.


뜯지도 않은 도넛쿠키는 그대로 식탁 위에 던져진 채, 덤 앤 더머일수록 더욱 협동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으며, 굶주린 그 밤이 빨리 새기를, 아침이 오면 따뜻한 모닝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야 말겠다, 속으로 되네이며 까무룩 잠들었는데,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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