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 오포 '보뚱치89'
짧은 휴가, 그리고 계속되는 장마.
올해는 특별한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핑계라면 핑계일 수도 있지만 너무 바쁜 나날들이 쉼 없이 다가왔다. 마치 SNS에 핫하다는 맛집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처럼, 하나를 끝내면 다른 하나가 이제는 내 차례라며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집에서 늘어져 있긴 싫었다. 남해 아난티 호텔을 예약하려고 했던 계획은 무산되고(숙소를 예약할 수 있는 날이 없었다) 난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경기도 광주에 예쁜 카페가 많다고 해서 검색하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곳은 보뚱치89. 카페에서 유기농 농산물을 팔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고, 무엇보다 카페의 천정이 높아 답답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초록의 식물들이 적절히 배치된 공간을 보며, 가만히 있어도 힐링되지 않을까 싶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달려 도착한 보뚱치89. 카페 이름이 너무 독특해서 입에 잘 달라붙지 않았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보뚱치길 89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카페 이름이 '보뚱치89'다(카페 사장님이 89년생인 줄 알았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페인데 벌써 소문이 난 건지 사람들이 좌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보뚱치89는 아래층을 장터로 활용하고 위층에 카페 테이블을 놓아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평소엔 1층도 카페 좌석으로 활용한다고 함). 나는 토요일에 이곳을 방문했는데, 매주 토요일은 #뚱칠장 이라고 해서 장이 열리는 날이다. 소박한 색감이 돋보이는 수제 그릇과 옷, 화장품, 그리고 다양한 식물, 유기농 쌀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나칠까, 더 이상 욕심부리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또 식물을 하나 데려오고 말았다. 길게 뻗어 나는 수형이 멋스러운 삼각잎아카시아. 식물을 고르면 원하는 토분에 예쁘게 옮겨 심어 주신다. 식물 값은 따로 받지 않고 토분 값만 계산했다. 또 쏘리 몰에 가입하면 쏘리 쌀 1KG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를 하고 있어서, 쏘리 쌀도 얻어 왔다. 집에 와서 바로 밥을 지어먹었는데, 꽤 괜찮았다.
먼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하러 1층으로 내려갔다. 사전조사 없이 그냥 갔던 터라 잠시 무얼 주문할지 고민했지만, 앞에서 바로 구워 김이 올라오는 깜빠뉴를 썰고 있는 직원분을 보고 주저 없이 깜빠뉴를 주문하고. 기본 음료인 아메리카노와 뭔가 이름부터 좋은 느낌이 드는 피치센셋을 추가했다. 예쁜 카페에는 늘 좋은 자리가 있기 마련. 이미 예쁜 자리는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어, 아쉬운 데로 아무 데나 빈자리에 앉았다가 메뉴가 나올 때쯤 더 좋은 자리가 나와 아줌마와 같은 스피드로 이동했다.
그런데 함께 온 이는 두 명이 앉기엔 너무 넓은 자리가 아니냐며 주변을 계속 살폈다. 꼭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편치 않았다. 명당은 아니었지만, 넓고 감성 사진을 찍기에 좋을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그에게 말했다. "원래 카페에선 그런 눈치 안 봐도 된다"라고. 정당하게 돈 내고 이용하는 카페인데 빨리 오는 사람이 좋은 자리를 앉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아 음료를 다 먹는 즉시 이곳에서 나가기로 했다(가족단위의 손님이 몰려와서). 상대는 내게 노 키즈존이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피치선셋과 아메리카노 그리고 마약깜빠뉴까지. 조촐한 메뉴였지만 빵이 올려진 플레이트 하며, 피치선셋의 색감은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투박한 나무 트레이가 멋스러웠다. 목가적이면서도 따뜻한 색감이 어우러진 것이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식사를 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카페를 찾은 거라 빵을 먹기엔 부담스러웠지만, 보는 것만큼이나 빵은 맛있었다.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한. 보뚱치89를 자랑하는 메뉴다웠다(맛있어서 다 먹고 옴).
2층 카페석에는 다양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디에 앉아도 멋지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억지로 꾸민듯한 느낌 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그리고 감각적인 생활용품과 옷을 판매하고 있는 #모니카팜 도 입점해 있었다. 이곳하고 참 잘 어울리는 팝업스토어.
예쁜 사진 몇 컷 남기고 싶어 기념사진도 촬영해 본다. 토요일에 찾으면 북적북적한 시장 냄새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평일에 찾으면 느긋하게 예쁜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 잠깐 시간을 내서 나왔더니 알게 된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