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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Oct 07. 2022

실외 배변만 합니다

비 오는 날 실외 배변 어떻게 하세요?


또 비 오잖아.


언젠가부터 나는 비에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푸디와 산책을 나가는 집사이기 때문에. 그것도 실외 배변을 포함한 산책러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할 순 없지만(푸디가 새로운 집으로 들어온 무렵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집 안에서는 전혀 배뇨나 배변을 하지 않았다. 강아지가 과연 그걸 참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가능했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푸디는 하루 종일 참았다. 동물병원에서는 간혹 그런 아이들이 있다며, 아침저녁으로 실외 배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그러면 방광염과 같은 질병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때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했다.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할 때는 남편이 새벽 5시에 푸디를 데리고 나갔는데, 문제는 그의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30대와 40대의 몸은 분명 달랐다. 서글픈 일이지만,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일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싸움이 잦아졌고, 보듬어주어야 할 존재에게 생채기를 남기기도 했다.


맞벌이 부부의 현실, 아기가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우리는 푸디만으로도 이렇게 어려움이 따르는데… 둘 중 한 명은 집안일을 하고, 푸디도 케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커리어를 포기하고 집에만 있는 건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고, 하루   푸디와 산책하는 일은 온전히  몫이 되었다. 사주에도  많은 팔자라 프리를 하는데, 회사에 출근하는 것보다 일이 많았다. 직장인과 다르게 프리가 일이 많다는 것은 모두 돈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즐거운 일도 없지만, 원고 마감으로 새벽까지 일을 해야 하는 날이면 하루  번의 산책이 버거운 날도 있었다. 그래도 가족 위해   있는 일이 있다는  감사하다고, 지금 가장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나 스스로에게 답을 주고 있다.

문제는 비 오는 날이었다.

푸디는 대퇴골두 절단술을 받은 이력도 있고, 슬개골도 좋지 않다. 게다가 과체중이라 제 몸하나 가누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점잖은 선비처럼 산책을 즐기는 푸디는 배변활동을 할 때도 아무 데나 배출하지 않는다.

킁킁, 킁킁킁, 킁, 킁킁

걷는 동안 계속 냄새를 맡아가며 상황을 주시하고, 꼭 풀밭을 찾아간다.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마땅한 곳을 찾아 헤매는 여정을 한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았다면, 빙글빙글 몇 바퀴를 도는지 신나게 돌다가 참고 있었던 그것을 밖으로 내보낸다. 물론, 이 행위로 작은 것을 먼저 배출하고 큰 것은 또 다른 장소를 찾아 탐험한다. 그렇게 똑같은 루틴으로 빙그르르 돌며 큰 것까지 다 내보내고 나면 푸디의 평온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집사의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진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이런 푸디의 행동에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푸디는 물을 싫어한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는 걷지 않는다. 원래도 잘 걷지 않는 아이지만, 비가 오면 그대로 멈춤이다. 그래도 실외 배변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집사는 푸디에게 우비를 입히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한 손에는 자동으로 펼칠 수 있는 장우산 들고. 푸디가 움직이지 않으니 한 팔은 푸디를 안고, 한 팔은 우산을 들고(내 팔뚝이 굵어진 이유가 이것 때문 일까). 집 앞 공원 숲길로 향한다. 11kg이 넘는 푸디를 안고. 팔이 부서질 것도 같지만, 나무가 우거진, 풀이 많은 공원은 푸디의 최애 배변 장소다.

푸디를 배변 장소에 내려놓고 우산을 씌워준다. 그리고 제발 빨리 배변하기를 기다리며 기도한다. 푸디는 엄마의 눈빛을 읽었는지, 어떤 날은 바로 배변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그대로 멈춰서 꼼짝하지 않기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노란 우비를 입은 푸디가 귀엽다며 웃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비 오는데 왜 나왔어?”하며 말을 걸기도 한다.

될 수 있으면 빗줄기가 좀 잦아든 시간을 기다려보지만, 장마나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냥 온몸이 다 젖을 각오를 하고 나간다. 푸디, 너 살 좀 빼야 돼. 엄마가 널 들기가 버거운 것도 있지만, 건강을 위해서 우리 다이어트 좀 하자. 먹는 건 최소인데, 안 움직이니 살이 어찌 빠지겠니.



나는 화창한 날이 좋다.

꼭 실외 배변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비 오는 날은 싫었다. 우산 들기도 귀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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