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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Feb 21. 2023

걸음이 느린 아이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중이에요


출동~ 뿌롱뿌롱이

오늘도 푸디는 위풍당당하게 현관문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들뜬 발걸음으로 아파트 건물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귀여운 생명체. 나는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나 여보, 당신보다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좋다. 그것도 풀네임으로. 강아지라고 다를 건 없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 특별함은 없어도 다정하고 친근한 기분이 든다.


내가 푸디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다. 푸디, 뿌롱, 롱뿌, 푸동, 푸리, 뿌로롱, 뽀로롱… 그저 입에 달라붙는 대로 푸디를 불러댄다. 그러면 푸디는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 같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애칭을 만들어 준 적이 없다. 간질간질 거리기도 하고,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내가 낯설 만큼 이상하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개는 말이죠.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좋아한대요. 화내고 소리 지르면 안 돼요."


내가 푸디에게 화내고 소리 지른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 이후로 난 정말 아기를 대하듯, 푸디에게 사근사근한 말투를 내기 시작했다. 역시 엄마라는 사람은 못할 게 없다.


푸디의 걸음걸이는 다른 강아지들과 다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질문을 한다.


"애가 어린가 보다. 정말 천천히 걷네."


푸디는 마치 아기가 걸음마를 하듯, 아장아장 걷는다. 네 살이면 개 나이로 어린 건 아니지만, 가끔 조용히 산책을 즐기고 싶을 땐 "네~"하고 짧은 대답을 해버리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말하곤 한다.


"애가 나이가 많나 보네. 힘들어서 그런가."


이제 네 살밖에 안된 아이를 졸지에 할아버지를 만들어 버리는 그들에게 네 살이라고 말하면 나는 그때부터 푸디가 왜 늦게 걷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타인의 일에 이렇게나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강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깨닫는 중이다. 걸음걸이가 타인과 다른 사람에게 우리는 "왜 그렇게 걷느냐"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게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존중하는 법이고 상처를 주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 년 전 푸디는 대퇴골두 절단술을 받은 적이 있다.

강아지의 경우 대퇴골두가 없다고 해도 주변 조직과 근육이 대퇴골두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한다. 큰 수술이라 재활에 신경 써야 해서 나름 아침저녁으로 푸디를 걷게 하는데만 신경을 썼었다.


의사 선생님은 일단 살부터 빼야 한다고 독하게 마음먹으라고 했다. 지금은 젊어서 괜찮지만 나이가 들면 각종 질병에 시달릴 수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난 푸디가 먹는 낙까지 없으면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것 먹고 산책 가고 마음을 다해 사랑해 주면 이번 생애 푸디는 행복한 강아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살을 빼기 위한 노력은 시도 중이다. 밥은 아침저녁으로 다이어트 사료(10알 내외)와 화식 50g을 섞어 먹였고, 중간에 고구마와 간식을 줬다. 밥 이외에 간식을 주지 않을 때는 살이 빠지는 것 같더니, 간식을 주고 나서부턴 살이 더 붙는 것 같았다. 조금씩 양을 줄이고 간식도 이제 하루에 한 번만 줘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성격조차 너무나도 느긋해서, 짖지도 않고, 다른 강아지에게 으르렁 거려본 적도 없다. 순둥이 대회가 있다면 분명 푸디는 일등감이라고 확신한다. 먹고 자고, 산책하고 자고, 또 먹고 자고... 이런 일상의 반복이 푸디의 통통한 몸체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푸디는 수술을 했고, 일 년간 재활을 시도 중이지만, 빨리 걷는 건 아직 어렵다. 난 푸디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산책을 한다. 햇살을 만끽하고, 나뭇가지에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새소리를 듣고, 하천의 물소리를 가슴에 담는다.


푸디는 천천히 그리고 행복하게 산책 시간을 즐긴다.

다른 강아지와 똑같을 순 없다. 빨리 걷지도, 뛰지도 않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흙냄새를 맡고 풀에 얼굴을 비비며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다.


우리 아이가 아파서, 걷는 게 좀 불편하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든 푸디를 만난다면, 그저 느긋한 아이, 걸음이 느린 아이, 아장아장 특유의 시그니처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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