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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Mar 06. 2023

너와 걷는, 달큰한 밤

봄이 오면 더 행복하겠지

달큰한 냄새가 나는 밤이었다.

아직 꽃이 피기에는 이른 3월 초였다. 갑자기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내 코끝을 스쳤다. 나도 몰래 기분이 좋아졌다. 봄이 가까이 있었다. 




겨울엔 6시만 되어도 어둑해져 밤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 제법 해가 길어진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 푸디와 저녁 산책을 나오는 시간도 조금 늦어졌다. 겨울엔 5시면 하던 일을 멈추고 푸디와 산책을 나왔다. 개는 야행성이라 밤을 좋아한다지만, 우리 집 강아지는 사람보다도 더 사람 같은 바이오리듬을 가지고 있다. 밤엔 잠을 자야 하는 지극히도 건강하고 모범적인 생활패턴을 유지하는 푸디는 해가 지면 산책을 나와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에 배출까지 필요가 없어지면 더더욱 걷는 일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인도 옆에 쌓인 나뭇잎과 흙냄새를 맡으며 이리저리 코를 가져다 대던 푸디는 아직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고르지 못했는지, 몇 번이고 같은 자리를 맴돌며 킁킁댄다. 적당히 볼일을 보면 좋으련만, 고집스러운 성격은 원하는 자리를 끝까지 찾아내고야 마는 집요함까지 겸비했다. 드디어 몸을 약간 낮추고 그 자리에 멈춘다. 두 번째 볼일을 보기 위해서 또 다른 장소를 찾는다. 장소를 찾는다기 보단 일단 몸을 움직여 장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워밍업일지도 모른다. 


걷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거나, 평소보다 빨리 걷는다면 두 번째 볼일도 보겠다는 거다. 푸디의 루틴은 언제라도 똑같아서 집사인 내가 쉽게 캐치할 수 있다. 푸디가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이끈다. 난 느린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른다. 그런데 오늘 밤엔 두 번째 볼일은 없나 보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선 푸디는 길을 건널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호등 앞에 서 있는 걸 즐기는 이유는 사람들 때문이다.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과 지금 푸디 옆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고, 구경하고, 그리고 사랑받기 위함이다.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떻게든 인사를 하고야 마는. MBTI 검사를 하면 무조건 E성향, 외향형일 게 분명하다.




내면보다는 외부에 주위를 집중하고 상대에게 감정을 표현하며 에너지를 얻는 사교적인 강아지. 오죽하면 우리는 한동안 푸디에게 '관종'이라는 별칭을 붙여 불렀을까. 하지만 이것은 강아지가 아닌 사람에게만 한정된다는 것이 조금 난해한 부분이기는 하다. 아마 푸디는 자신이 사람이라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약한 다리 때문에 발랄하게 달려드는 강아지를 감당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다리가 튼튼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중성화 수술을 하기 전엔 푸디는 강아지에게도 사교성이 좋았다. 너무 좋은 게 탈이었다. 물론 맘에 드는 강아지에게만 집착적인 수준을 보여줘서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정말 헌신적인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매일이 재활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산책을 하고 있고, 지금은 오른쪽 뒷다리도 조금은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절뚝거림도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얌전하게 다가오는 강아지나 조금 나이가 있는 강아지에게는 인사를 하고, 흥미가 있는 것이 보인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 봄이고 산책과 피크닉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다.

아직도 밤에 나를 스쳤던 달큰한 꽃향기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단순하게 지나가는 사람의 향수냄새였거나, 건너편 빨래방의 섬유유연제 냄새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무렴 어떤가. 봄은 곧 내게 와 예쁜 꽃을 보여줄 테고 푸디와 나는 꽃놀이를 즐기며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기게 될 것이다. 올봄이 더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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