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 child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서른다섯이 너무해

by 김효정
요 이쁜 것


엄마는 내 손을 꼭 쥐면서 본인의 얼굴에 가져다 댄다.


이 작은 손으로 무엇을 할꼬


서른다섯의 다 큰 딸에게 보내는 눈빛은 언제나 어린아이를 보듯 따뜻하고, 걱정스럽다.

이 세상에서 나를 아이로 봐주는 사람은 엄마뿐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엄마에게 딸이란 존재는 나이 마흔이 되든 쉰이 되든 영원한 아기가 될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축복이다.


30대 초반에는 누군가에게 아이 취급받는 게 싫었다.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 몸에 맞지도 않는 헐렁한 옷을 입고 부끄럼도 없이 거리를 활보했다. 젊음은 계속될 것 같았지만, 패기 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생기면서 중압감은 커졌다. 경험에서 오는 익숙함을 눌러버릴만큼 상황은 수시로 바뀌었고 대부분의 일들은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불현듯 누군가의 보살핌 아래,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찾아들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요즘 들어 계속해서 되새김질한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책임을 더해가는 것. 삶이 자유로워지는 값으로 치러야 할 것은 책임이었다. 그러니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아이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자신을 아이처럼 바라봐주는 누군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어리광을 피워도 되는 존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다시 아이가 되고 싶은 걸까?


지난주, 엄마가 서울에 왔다. 엄마는 텅텅빈 냉장고를 반찬과 과일로 채우고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 세상에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아기취급을 하면서 말이다. 새삼 나는 엄마가 있음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이런 기쁨을 주는 사람이 내 어머니라는 사실에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성장'이란 말을 좋아한다. 하루하루 더 좋은 사람, 더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보내는 일상을 응원한다. 지금의 나도 좋지만, 10년 후의 나는 더 멋진 사람일 것이므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받는게 아니라 주는 인생. 그때쯤엔 나도 어른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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