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와 충족에 의한 연애

나 생각보다 안 쿨해

by 김효정
나, 네가 필요해

필요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까지는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게 기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말이 참 씁쓸하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이 한마디의 뒷면은 매우 추악하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필요와 충족에 의해 지속된다. 내 편이 필요하면 우리는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관심 있게 관찰하고 다가가 정을 나눈다. 그렇게 만남을 지속하면서 서로 간에 필요와 충족이라는 일종의 조건이 형성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취미를 함께할 사람이 필요해서, 외로움을 달래줄 이성이 필요해서, 쉴 곳이 필요해서, 결혼할 상대가 필요해서, 사랑이 필요해서... 이유는 많지만, 결국 모두 필요에 의함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상대가 충족시켜줄 수 있을 때 우리는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순수하게 앞뒤 보지 않고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멋모를 때나 가능한 일.

왜 결혼을 안 해요? 더 놀고 싶어요?
이제 정착해야지. 언제 좋은 소식 들려줄 거예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하려고요.


결혼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하고 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을 보냈다. 어딘가 사랑은 꼭 존재하리라는 믿음이 조급한 마음을 떨쳐버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나이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 불행하게도, 두 눈 똑바로 뜨고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나이 든 솔로는 쉽게 누군가 좋아지지 않는다. 많이 겪고 많이 아파하고 많이 상처 입을수록 선을 긋고 아무도 다가올 수 없는 펜스를 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용한다. 필요와 충족에 의한 만남은 다 그렇다.


화장품이 필요해 화장품을 산다. 얼마의 돈을 지불하고 내 소유가 된 이 물건은 내가 여자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자존감을 높여준다. 그러다, 새로운 화장품을 발견하고 고민에 빠진다. 새로운 건 어떨까? 내 피부에 맞을까, 기존에 쓰던 것보다 좋을까.

지금은 이 화장품이 가장 좋은데, 언제까지 나의 베스트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가 나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가차 없이 다른 화장품으로 마음은 기울겠지.


사랑으로 굳건하리라 믿었던 관계도 그저 한낱, 필요와 충족에 의한 만남이라고 생각하니 기운이 빠진다. 지금까지 나는 허공에 떠 있는 연기를 보고 달콤한 솜사탕이라고 생각한 걸까.


당신은 이래서 좋아요.


이 말은 그 사람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그의 행동이나 상황이 좋다는 말이다.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는 것. 기운 빠진다. 잠시 꿈을 꾸었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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