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 당신
남들 잘 하는 연애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왜냐면,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으니까.
차라리 차갑게 식어버린다면 포기라도 빠르지. 적당히 뜨뜻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연애란, 그러하다.
누구를 만나도 뜨거워지지 않는 심장을 가지게 된 건, 내가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 나보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나보다 그를 더 사랑해 줄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매력 없거나, 생각이 불완전하다거나, 나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꽤 괜찮고 따뜻한 사람들도 있었다.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사실 이런 미적지근한 온도를 가지고 사는 내가 좋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의 나는 누군가를 만나 헤어지더라도 상처를 받지 않았다. 몇 개월을 만나면서 좋은 추억이 많았을 텐데도 헤어짐은 내게 '별일'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이별을 하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하는 연애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며, 연애 또한 그런 사람이 하는 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얼마 전 신촌에서 지인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나오면서 길을 걷다 타로점을 봤다. 특별한 고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재미 삼아 각각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는데 아무런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물어야 하는 거지?'
고심 끝에 정말 황당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제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질문이며, 이미 예시 답안이 나오는 그런 물음이었다. 9장의 카드를 뽑았는데, 언니의 말이, 나는 지금 누구도 내 마음에 들어올 수 없어 철벽 방어를 치고 있단다. 사랑보다는 일이 우선이며, 연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서 누구를 만나도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에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음에도 내가 마음을 꼭꼭 닫고 있기 때문에 잘 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리고 그 언니는 내게, 운명 같은 사랑은 없으니까 마음의 문을 열라고 조언해 주었다. 뭐 질문 자체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답도 이렇게 확실하지 않을 수밖에.
그날 만난 두 여자들과 나는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부터 회사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에는 연애나 남자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녀들은 내게 정말 나를 아껴주고,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내가 연애 자체에 불신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이야기들은 내 귓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허공을 떠돌다가 사라져 버릴 먼지 같았다.
너 자신을 사랑해?
네, 전 제가 너무 좋아요.
혼자인 건 어때?
혼자 있는 시간도 너무 행복해요.
그럼, 혼자일 때를 행복하게 여기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세상을 더 살아본 선배는 이런 조언을 하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혼자인 것을 즐기면 누군가를 만나도 행복하고 즐겁다고 덧붙였다. 지금 혼자인 시간이 이렇게 좋은데, 선배의 조언처럼 정말 누군가를 만나 함께해도 행복할 수 있을까?... '하나가 좋으면 둘도 좋다'는 그의 이야기는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에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생각이, 감성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 내 삶이고 내 연애니까.
책 읽는 것을 좋아했으면, 동물을 아끼고, 자연을 사랑하고, 내가 쓴 글을 읽어주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날에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도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콩깍지가 씌어서 물불 안 가리는 뜨거운 온도의 연애가 아니더라도, 그냥 미지근해도 누군가의 이름에도 가만히 미소 지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참... 어렵구나.
그러고 보니, 난 아직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솔메이트.
이 나이쯤 되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서 맞아야 되는 게 몇 가지가 있다고 주변에선 자꾸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것쯤은 맞든지 말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정신적인 교감만 있다면, 행복하고 즐거운 연애를 백번이라도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