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통곡

나의 슬픔이 너에게는 전해지지 않기를

by 김효정

오랫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 슬픔이 그대로 이 공간에 적히게 될까 봐. 건들면 바로 깨져버릴 유리잔 같은 존재.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나를 삼켰고, 나는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혼자 지낼 수 없음을 직시했다. 말은 안 했지만 매 순간 내 마음속에는 성난 파도와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세상이 나를 등진 기분이었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강아지를 입양했다. 어쩌면 내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자고 혼자 살면서 반려견을 키우려고 마음먹은 건지.

웃어도 눈물이 나는 요즘,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죽어있는 시간,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나날들이 지나고 나는 늙어간다. 혼자 있는 시간은 무섭고 막막하고 또 슬프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았는데, 왜 나는 욕심을 부리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되어버린 걸까.


퇴근 후, 잠깐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집에 들어오느라 귀가 시간이 좀 늦었다. 죄책감에 강아지와 꽤 많은 시간을 놀아주고 밥과 간식을 챙겨줬다. 청소기를 돌린 후, 씻고 나면 나의 밤 시간은 시작된다. 무료했지만, 강아지의 귀여운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난다. 그것도 잠깐. 개껌을 다 먹은 강아지의 장난이 시작된다. 물어뜯기. 애교 수준을 넘어선 물기는 손에 구멍이 날 지경이고 허벅지, 종아리 인정사정없이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대니 종아리도 상처투성이, 팔도 마찬가지다. 왜 하지 말라고 하는 걸 계속하는 걸까. 내 말이 장난으로 들리는 걸까. 아니면 오늘 늦게 집에 온 것에 대한 복수인 건가. 하루 종일 혼자 있었을 강아지에게 제대로 화도 내지 못하는 날 발견하곤 또 기운이 빠졌다. 내가 참을 때마다 하는 행동은 어금니와 앞니를 꾹 무는 것인데, 요즘 하루에 몇 번씩은 계속하고 있다.


하지 마, 푸디! 제발 나 좀 살려줘

갑작스럽게 달려들어 또 다리를 무는 강아지에게 하지 말라고 소리도 쳐보고 도망도 다녀보고 문을 닫아보기도 하고 수많은 행동들을 시도해보지만 결국 똑같다. 처음에만 약간 시무룩해 있다가 이내 또다시 달려든다. 강아지 딴에는 장난이겠지만, 난 몇 번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그러다 갑자기 발을 물어서 피하려고 뒤로 빼다가 침대 프레임에 뒤꿈치를 찍었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4살 어린아이처럼 나는 대성통곡하면서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던 걸까. 왜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걸까. 애정을 쏟는 것들에 대해서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되려 나를 슬프게 하는 걸까.


내가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엉엉 울고 있으니, 푸디는 당황해한다. 내 곁으로 오더니 낑낑거리면서 얼굴을 핥는다. 마치 위로라도 하는 것처럼.


울지 마, 왜 그래, 그러지 마


생각보다 푸디는 똑똑하구나. 마치 내 슬픔을 그대로 느끼는 것 같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그만 울어야지, 강아지에게까지 슬픔을 주는 건 안 될 일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강아지는 주인이 울면 똑같이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게다가 가장 먼저 위로해 주기도 한다고. 가끔 푸디가 아직 아기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푸디에겐 무는 게 그저 놀아달라는 표현이고 장난의 한 부분일 텐데, 나는 푸디의 그 마음을 받아주기가 너무 버겁다. 잘 사는 듯하다가도 가끔은 너무 서럽고 아프고 눈물이 나는 게 우리의 삶이니까. 게다가 상처가 큰 사람에겐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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