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이 보내는 애정과 관심에 감사하지만, 때로는 부담스러운 순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아들입니다.
오전 일곱 시가 되면 슬며시 일어나 제 몸 위로 올라타며 아침이 왔음을 알립니다. 제 얼굴을 바라보며 거실로 나가자고 칭얼대는 아들은, 제가 일어나 주기를 바라며 뽀뽀, 간지럼, 알람 작동, 배 위로 올라오기 등 잠을 깨우는 수많은 방법들을 터득해 냈습니다. 그때부터 잠들 때까지 갖가지 놀이를 제안하고, 때로는 ‘아빠가 좋아하는 놀이’를 하자며, 선심 쓰듯 재미있는 놀이를 제안하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빠 조금 쉬다가 하면 안 될까?”입니다. 내일은 꼭 다시 재미있게 놀아주리라 다짐하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하루 종일 놀이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와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는 영원한 아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부모가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목표는 아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 잘 ‘자립’하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가 성장하며 자립심과 독립심이 생기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며,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달 시기에 맞게 잘 자란다는 것은 점차 부모와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생겨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쁜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한편으로는 섭섭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아이가 저에게 안기고, 칭얼대며 함께 놀자고 제안하는 시기는 긴 인생에서 보았을 때 10년 내외의 아주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제가 귀찮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영유아 시기는, 어쩌면 인생에서 부모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토록 순수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순수한 눈망울과 사랑 고백, 소중한 간식을 나누어 주는 작은 손, 작은 몸짓에도 저를 향해 까르르 웃어주는 반응, 제 뒤를 졸졸 따라오는 귀여운 발걸음까지.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랑받는 아빠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어쩌면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보다, 아이가 부모에게 보내는 사랑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