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서 내 자녀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자녀가 힘들다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가장 괴롭게 하는 일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불안과 죄책감이 뒤섞이기 때문에, 많은 부모는 자녀의 어려움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전에 '사춘기'라는 구실 좋은 이유로 치부하며 부정부터 하게 됩니다.
학교 현장에서 면담과 심리검사를 통해 학생의 만성적인 우울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상담교사로서 저는 그 결과를 당연하게도 부모님께 안내드리는데요. 놀랍게도 병원이나 상담치료까지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애들 다 힘들잖아요.”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죠.” 혹은 이런 반응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마음이 너무 약해요.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상담 좀 해주세요.”
어떤 맥락에서 말하시는지 일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시대가 많이 변한 지금도 정신건강에 대한 부모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혹은 자녀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부정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녀의 고통은 더 깊어지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마음의 무게는 더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우울은 부모의 개인적인 희망사항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우울을 한철 지나가는 바람쯤으로 여깁니다. 날씨처럼 잠깐 흐려졌다가 다시 맑아지리라고 믿는 것이죠. 그러나 우울은 바람이 아니라, 천천히 빠져드는 늪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이의 일상생활과 관계, 학업, 잠, 식사, 감정 조절까지 서서히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늪은 조용하지만 서서히 자녀의 모든 것을 잠식시켜 갑니다.
아이의 우울을 가장 늦게 알게 되는 사람이 부모일 때가 많습니다. 부모가 알게 된 시점이라면, 자녀는 이미 부모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우울의 늪에서 혼자 버티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뒤늦게 알아차린 만큼 가장 마지막까지 자녀의 우울 곁을 지켜주어야 하는 사람 또한 부모입니다. 상담실에서 만난 많은 학생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말해도 내 마음을 몰라요.”, “아빠에게 혼날 거예요.”, “말하면 더 힘들어질까 봐 그냥 말 안 해요.”
부모는 자녀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신념의 반대로 행동해서, 자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자녀가 빠져있는 깊은 수렁까지 함께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우울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치료와 변화의 시작이 됩니다. 우울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인 것입니다.
자녀의 우울은 나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좌절상황에서 본인을 지키고자 노력한 생존의 치열한 결과물입니다. 부모가 앞으로 해주어야 할 일은 아이를 정신 차리게 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해야 하는 일들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추궁하거나 조언하려 하기보다, 자녀가 스스로 어려움을 표현하도록 도와주고 공감해 주면 됩니다. 자녀가 쉼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학교를 어느 정도 쉬면서 회복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우울이 깊을 때는 부모 혼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상담기관, 병의원 등 외부기관의 도움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우울을 죽음과 연관 지어 생각할 때는 상담보다는 병의원의 개입을 우선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와 마찬가치로 부모도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울은 숨기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전문가와 부모가 함께 다루어야 하는 어려움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부모가 자녀 곁에 머물며, 이해해 주겠다는 태도를 보일 때만 자녀의 회복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