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스토너였다
담담한 문체로 스토너의 삶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실패한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 무게가 실린다.
불행한 가정생활, 조교수로 밖에 남지 못한
교직 생활 등 그의 인생 전반을 살펴보면 불행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러나 스토너는 정말 살면서
불행했을까?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운이 좋게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에서 우연이 듣게 된 문학 수업에서 사랑에 빠진 그는 문학도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교직 생활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부모의 큰 반대,
경제적 어려움으로 꿈이 좌절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이룬다.
그는 정말 문학을 사랑했고 문학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열의를 다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는 걸 알더라도 현실에 벽에 부딪혀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살면서 일로 얻을 수 있는
성취감과 자아실현이 무척 크다고 생각하는 나는
스토너의 삶이 이 부분에서 무척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니.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책도 한 권 썼다.
불행한 가정생활을 도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지 모르지만 연구에도 몰두했다.
직장 동료와의 갈등, 너무 강직한 성품으로
조교수로서 교직 생활을 끝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어도 하고
좋아하는 수업을 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느낀 즐거움과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교수의 직위는
스토너를 불행한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하게 한다.
사회적 인정과 직위가 스토너에게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그는
진정한 교육자로서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여도 교수직이 박탈당하지 않는 안정된 고용 환경도 있었다. 물론 스토너는
다른 대학으로 떠나 교육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디스의 반대로 좌절 됐을 때도
돌아가서 강단에 설 자신의 작은 자리는 있었다.
요즘처럼 고용 안정성이 불안하고 시대가 너무 빠르게 바뀌어 언제 나의 일자리를 박탈당할지 모르는
사회에서는 평생 나의 고용을
보장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안온함을 느끼게 된다.
너무 성급한 선택으로 한 결혼이 불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진실한 사랑도 만났다.
사회적 잣대를 다 떠나 자신을 불태워서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을 만나
함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일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큰 행복이지 않았을까?
사회적 시선에 떠밀려 결국 아픈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불꽃을 피워볼 수 있었다면
그의 삶에 큰 미련은 남지 않았으리라.
우리 삶에 가장 큰 축인 일과 사랑에서 나름의 행복을 맛본 스토너는 우리의 잣대로 실패한 인생이라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스토너의 삶에서 내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이디스의 손아귀에서 딸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좀 더 강력하게 딸의 행복을 위한 노력을 했다면 그의 인생이 조금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스토너의 삶을 따라가며 화도 나고 답답해서
가슴을 치는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스토너가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았다고 본다.
그 자신의 기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충분히 책임진 삶이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불행이
그를 힘들게 했다 하더라도 모든 인생은 끝에서 보면 해피엔딩 아닐까?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도 불행이 나의 발목을 곳곳에서 잡는다면 어떨 때는 내어주고 어떨 때는 뿌리치며
나아가면 좋겠다. 결국 우리 삶은 수많은 불행 틈
양념처럼 쳐진 행복을 맛보며 완주해야 하니까.
그리고 그 종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달려온 길을 보며 환하게 웃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