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실업급여를 받으며 여러 곳에 서류를 넣었다.
당시 나는 사무행정직을 주로 지원했지만, 기업들에겐 실업급여를 받기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사기업에서는 면접일정에 대한 연락을 하지 않았다.
'14년 기자 경력만 믿고 서류를 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했던 것이 컴활이었다.
자격증을 취득한 뒤 전문대학과 대학교, 시청 등 다양한 계약직에 지원했고 몇 차례 면접도 봤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재취업을 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는 면접은 유난히 떨렸다.
어떤 면접에서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고, 그런 내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여러 번의 시도를 지나며 어느 순간 면접에서 긴장이 줄어든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공고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지자체 홍보팀의 임기제 자리였고, 재공고였다.
서류를 낼지, 들러리로 끝나는 건 아닐지 집과의 거리도 고민이었지만 지원했다.
서류도 붙었고, 면접도 보게 됐다.
면접이 끝나고 지역 언론계에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면접자 명단이 돌아다니고, 이미 내정된 사람이 있는 면접이었다는 말도 들려왔다.
특정인을 위해 마련된 자리라는 소문이었다. 내정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지만, 결국 소문 속의 주인공이 최종 합격했다. 나는 ‘우연의 일치야’ 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내정 여부와 상관없이 나를 다듬어야만했다. 취직의 문을 뚫기위해서.
면접이 끝나면 늘 하던 대로 상황을 복기하고 부족한 부분을 분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취업의 고민을 해본적이 없었다.
졸업을 하자마자 취업했고, 큰 어려움 없이 일을 시작했다.
벌이는 크지 않았지만 취업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이 없었다.
그때 알지 못했던 ‘추위’를 지금에서야 겪는 것 같다.
직장이 있다는 것. 그 안정과 소중함을 나는 오래 잊고 살았다.
그렇다고 퇴사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기자 경력이 멈춰 있었다는 사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어느새 올해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퇴사 후 계획하고 마음먹었던것들이 다 어그러졌지만
지랄맞은 상황들을 겪고 나면 더욱 찬란해 질것이라 믿어 의심치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