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를 디자인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시작할까?
일단 고객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인 디자인은 열지도 않았는데, 수만개의 고민이 앞을 가로 막는다.
일단 최소 수량만 제작해서 어떻게든 마케팅을 시작할까?
아니야, 그래도 판매 전략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회사에서 마케팅을 할때는 제품은 있기 때문에 어떻게 알릴지를 집중 고민하면 된다. 그런데 이제는 제품을 어떻게 만들지부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막막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아주 재밌게 읽던 책이 있었다. '더 히스토리 오브 더 퓨처'란 책이었다. 이 책은 VR 열풍을 몰고온 오큘러스의 탄생부터 페이스북이 인수한 후에 벌어진 암투를 담고 있다. 특히 나를 푹 빠지게 한 요인은 VR에 빠진 괴짜 아웃사이더 '럭키팔머'의 열정이었다. 럭키는 VR에 대한 열정 하나로 독학으로 VR 전문가가 된다. 그리고 첫번째 오큘러스의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 스타터'에 올려서 제작 하게 된다.
오큘러스는 '킥 스타터'에서 250만 달러를 모으며 단번에 이슈의 중심에 선다. 그 이후 페이스북에 무료 20억 달러에 인수되면서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도 오큘러스 같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런데 나에게 럭키 팔머 같은 열정이 있을까? 솔직히 그건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보고나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작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 수량을 제작할 수 있고, 홍보도 함께 할 수 있으니 1석 2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BLOCK이 오큘러스 같은 브랜드가 되는 것을 꿈을 꾸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도 킥스타터로 한번 시작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킥스타터에 들어갔다. 꿈은 크면 좋다고, 어차피 블록은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브랜드를 꿈꾸는 거니까, 킥스타터로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킥스타터에 들어가서 프로젝트를 살펴봤다.
그런데 킥스타터는 한국에서는 불가능했다. 킥스타터를 찾다보니 비슷한 플랫폼으로 인디고고라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그런데 인디고고도 한국에서는 불가능했다. 일본은 되는데 한국은 안된다는게 서글펐다. 생각해보면 해외 펀딩은 어렵긴 했다. 만약 펀딩이 성공한다고 해도 플래너를 보내는 것부터 문제였다. 게다가 코로나로 더욱 더 어려운 상황 이었다.
결국 한국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찾아봤다. 텀블벅과 와디즈를 살폈다. 텀블벅은 확실히 창작자 중심의 프로젝트가 주를 이뤘다. 와디즈는 보다 큰 브랜드가 많았다. 펀딩의 규모는 와디즈가 보통 더 컸다. 하지만 내 상황을 고려했을때는 창작자 중심의 텀블벅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하기로 했다. 펀딩 스토리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제품이 필요했다. 샘플 제작을 서둘러야 했다. 플래너 한권 정도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역시 쉬운일은 없었다. 남들이 만든것을 보면서 평가하는 것은 쉽다. 평소 다양한 플래너와 다이어리를 써보면서, 내가 만들면 그것보다는 훨씬 잘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샘플 제작부터 막혔다.
우선 디자인 작업이 생각보다 막막했다. 노트에 스케치를 할때는 쓱싹쓱싹 끝낼 수 있을거라고 자신했지만,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문제가 무엇일까. 욕심이 계속 늘어난 것이 문제였다. 뭔가 계속 더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애초의 기획의도는 사라지고 배가 산으로 가고 있었다.
다시 초안으로 돌아가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초안으로 돌아갔다. 블록의 핵심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냥 디자인을 하는것에만 몰두하고 핵심을 고민하지 못했던 것이 패인이었다. 블록은 집중성과를 중심으로 하루를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생각에 바탕한다.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을 관리하고 개선해야 하는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단순하고, 쉽고, 재미있게 꾸준히 쓸 수 있는 플래너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마구잡이로 더 있어보이고 싶어서 더했던 곁가지를 처냈다. 보다 깔끔해지고, 디자인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샘플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참고할만한 제품이 필요했다. 리서치는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시작할때부터 내 마음에 있던것은 몰스킨 하드커버 였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써온 다이어리 였다. 물론 나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쓰고 있는 몰스킨은 이쪽 세상의 최고 브랜드다.
몰스킨은 창조성이란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다. 플래너를 만들면서 알게됐지만, 몰스킨 가죽이나 내지 구성은 퀄리티 측면에서는 뛰어나지 않다. 오히려 소규모 문구 브랜드의 품질이 우월한 것도 많다. 그런데 상당히 비싼 가격임에도 - 다른 플래너가 몰스킨 가격이면 절대 팔리지 않을거다 - 몰스킨을 쓰는 사람은 몰스킨만 찾는다. 나도 그중 하나이다.
몰스킨 기본형 사이즈와 커버 느낌을 참고해서 샘플을 제작할 생각이었다. 우선 디자인을 마무리 해야 했다. 그런데 이 작은 플래너의 페이지 한장을 디자인하면서도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날짜와 요일은 어떤 폰트를 사용할까? 아니면 만년형이 낫지 않을까? 블록의 크기와 사이의 공간은 얼마로 할까? 작성 칸 사이 공간은 얼마가 적당할까?
수많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스케치할때는 간단하게 느껴진 것들이 실제 작업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주 작은것부터 고민의 연속이다. 이럴때 중요한것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초안을 빠르게 제작하는 것이다. 우선 블록의 기본이 되는 데일리 페이지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첫번째 블록은 11월, 12월 2개월 분량을 담기로 했다. 애초 기획한것은 기본은 분기단위, 3개월씩 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2021년 1-3월, 1분기 분량으로 시작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쇠뿔도 당긴김에 빼라는 말처럼, 너무 준비를 오래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우에는 특히 더했다. 우선 일주일이라도 빠르게 시도해보고, 실수가 있다면 개선하는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은 2개월 분량으로 시작하기로 한것이다. 물론 걱정이 있었다. 무엇보다 누가 11-12월만 쓸 수 있는 플래너를 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급하게 하지말고 2-3개월 준비해서 제대로 시작하는게 맞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됐다. 하지만 어쨌든 부족함이 있더라도 빠르게 시도하는것이 더 의미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제 실제 플래너 한권으로 만들 차례였다. 플래너를 제작할 수 있는 업체를 찾는것이 중요 했다. 구글과 네이버에서 '플래너 제작' '다이어리 제작' '플래너 소량 제작'등의 키워드로 검색했다. 수많은 업체가 나열됐다.
"안녕하세요. OOO 입니다."
"안녕하세요, 플래너를 제작하고 싶어서요."
"네, 사이즈와 페이지 수가 어떻게 돼나요?"
"13X21cm고, 156페이지 입니다."
"커버는요? 하드커번가요?"
"네, 하드커버고 재질은 잘 모르겠는데, 몰스킨 플래너에서 쓰는 걸로요."
"네 몇권 제작하시나요?"
"우선 샘플로 1권이 필요합니다."
"1권이요?"
대부분 샘플로 1권을 제작하는것은 난감해했다. 주문 제작은 인쇄 판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일단 이때 제작비의 상당수가 든다고 했다. 결론은 1권 제작은 어렵다는 것이다. 최소 20권 이상은 제작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1권을 제작할 수는 있지만 1권이나 20권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대략 30만원정도가 필요했다.
샘플 제작에 30만원 정도는 쓸 수 있지만, 백수인 나에겐 정말 큰 돈이었다. 게다가 이 샘플은 말 그대로 펀딩 페이지 제작에만 활용하고, 실제로 만들 제품은 또 달라질것이라서 1권 이상은 필요가 없었다.
또 고민에 빠졌다. 이 샘플 1권의 목적에 대해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샘플은 펀딩 소개 페이지에서 프로젝트를 소개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펀딩을 진행하면서 페이지를 개선하고 수정할 예정이다. 그래서 펀딩이 종료된 이후에는 샘플의 역할은 끝난다.
1권이면 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하드커버로 제작하지 않고, 그냥 종이 플래너를 제작한다. 품질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출력해서 기본적인 제본으로 제작한다. 그리고 커버는 집에 있는 몰스킨에서 하드커버만 분리해서 사용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할까. 너무 절묘한 아이디어라고 자화자찬 했다. 몰스킨은 특히 커버에는 로고도 없기 때문에 더 활용하기 쉬웠다. 특히 몰스킨과 같은 느낌으로 제작할 것이기 때문에 커버만 보면 이게 제대로 된 샘플이기도 했다. 띠지만 프린트를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하면 인쇄와 기본 제본비만 든다. 비용은 2만원. 제작기간은 3일. 기존 샘플 제작과 비교하면 비용은 1/15, 기간은 1/7로 줄였다. 물론 샘플의 품질은 부족할 순 있다. 하지만 페이지 제작에 완벽한 샘플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완벽한 샘플을 제작하려고 하다가 시작을 못하는 수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