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제작이 끝났다. 이제 텀블벅에 올릴 펀딩 스토리를 작성할 차례.
이것은 어렵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스토리 작성에만 3주가 걸렸다.
스토리 제작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정중에서 가장 어려웠다. 그만큼 중요하기도 했다. 스토리는 내 브랜드의 가치를 잘 담아야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길어져서도 곤란하다. 핵심을 담고, 구성을 설명한다. 최대한 고객들에게 BLOCK의 가치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후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했다.
이런 부담이 눈처럼 쌓이고, 쌓였다.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 쓰고 고치기를 수십번을 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텀블벅을 시작하면서 필요한 내용을 작성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케팅의 전반을 고민하게 된다.
텀블벅 섹션 구성은 대략 다음과 같다.
'창작자 소개, 프로젝트 소개, 선물 구성 및 소개, 프로젝트 예산 및 일정'
각각의 섹션을 작성해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이 정도 쓰는거야 뭐 어렵겠어라고 자신했지만, 정말 어려웠다. 모든 섹션을 작성하는데 3주 가까이 걸렸다. 나(창작자)를 소개하는 것만 1주일이 걸렸다. 정리한 것을 보면 두세시간이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하하.
모두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섹션은 프로젝트 소개 이다. 프로젝트의 의미와 가치를 몰입감 있게 전달하고, 결과적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후원을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스토리를 정리하고, 제작 과정을 설명한다. 블록 플래너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이어서 가격정책이다. 회사에서 마케팅을 할때 가격 정책을 고민할 일은 없었다. 이미 가격은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서 마케팅을 하면 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만드는 이 브랜드의 가격은 당연히 내가 정해야 한다. 가격을 정하는것도 1주일이 걸렸다. 물론 일주일 내내 가격만 고민한 것은 아니다. 이때 내가 가격을 정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블록 플래너의 차별성과 가치
내가 생각하는 블록 플래너의 가치와 적정 가격
다른 플래너/다이어리 가격대 조사를 통해서 파악한 적정 가격
블록 플래너의 차별성과 가치
블록 플래너 컨셉은 차별성이 있다고 자신한다. 대부분의 플래너는 시간 관리에 집중한다. 더 근면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야 한다고 주입한다. 하지만 블록 플래너는 이와는 정 반대다. 성실하지 말고 집중할때 제대로 집중하고 쉴때는 제대로 쉬어야 한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다. 매분, 매초를 관리하고 활용할 수 없다. 시간을 관리하지 말고, 집중을 관리해야 한다. 블록 플래너는 이런 생각을 기초로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블록 플래너의 가치와 적정 가격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한 적정 가격은 2만원대 후반 이었다. 블록 플래너의 하드웨어(커버 종류, 사이즈등) 모델인 몰스킨이 약 2만5천원 정도였다. 그에 블록 플래너만의 가치를 더해서 3만원 가까운 가격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플래너/다이어리 가격대 조사를 통해서 파악한 적정 가격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블록 플래너는 1권이 1분기를 담고 있다. 즉 1년을 다 작성하려면 4권을 사야하는 것이다. 몰스킨은 데일리 플래너 (365일 분량)가 약 3만5천원 정도다. 문제는 블록 플래너는 몰스킨과 같은 인지도가 없다는 것이다. 1분기, 3개월을 사용하는 플래너를 3만원 가까이 주고 산다? 쉽지 않다. 대부분의 하드커버 플래너는 1만원 초-중반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최종 가격대를 정하는것이 정말 고민 됐다. 한번 정하면 쉽게 바꿀 수 없다. 너무 비싸게 했다가 아무도 구입하지 않아도 문제고, 너무 싸게 했다가 그냥 그런 플래너로 인식되도 문제다.
개인적인 욕심은 2만7천원 대 였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때 고객을 설득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우선 첫번째로 펀딩하는 제품은 베타 버전이었다. 주간,월간,분기 블록은 제대로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10월에 제작을 하기 때문에 11,12월 2개월만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다 제작 할때 커버의 색깔도 블랙 하나였다. 고객 입장에서는 커버 색상도 고를 수 가 없었다.
2개월만 사용할 수 있는 플래너를 2만7천에 판다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권당 금액을 21,900원으로 확정했다. 이 가격 조차도 15,900원 부터 썼다 지웠다를 수십번 했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부담스러울 금액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블록 플래너 스토리를 보고, 그 가치에 관심을 갖는 고객이라면 도전해볼만하다고 판단했다. 정가는 27,900원으로 했다. 이번 펀딩에서만 21,900원으로 할인된 금액으로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방법을 썼다.
그런데 이 가격과 혜택에서 실수를 했다. 펀딩하는 기본형은 날짜와 요일이 작성되어 있다. 즉 11/1-12/31까지 매 페이지마다 작성되어 있다. 블록 시간도 06-24시까지 작성되어 있다.
이런 날짜 고정형은 장단점이 명확하다. 장점은 일단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매번 요일을 쓸 필요도, 블록 시간을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단점도 있다. 안 쓰는 요일은 그냥 페이지를 버리게 된다. 또한 자정이후에 시간은 기록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플래너가 만년형 (사용자가 날짜,요일을 직접 기입하는 형태)을 제작한다.
만년형을 제작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날짜가 적혀 있는 형태는 그 때 아니면 판매할 수 없다. 예를 들어 2021년 1분기(1/1-3/31) 버전이라면 늦어도 1월 중순 이후에는 판매가 어렵다. 대신 만년형은 아무때나 판매할 수 있다. 그만큼 한번에 대량 제작이 가능하다. 단가를 낮추고 이익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이때는 고려하지 못했다. 난 그래도 기본 블록 플래너는 고정형(기본형)이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정형은 매 분기마다 제작해야 하고, 수량 파악과 제작비의 부담이 상당하다. 하지만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블록 이란 브랜드의 가치를 키워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선은 기본형은 말 그대로 기본으로 제작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이런 부분과 별개로 만년형은 조만간 만들어야 했다. 만년형을 원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첫 펀딩을 하면서 만년형을 노트커버로 제작해서 추가 선물로 더했던 것이다. 할인도 받고, 추가 선물도 드리는 혜택으로 마케팅 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후원자분들이 펀딩에 참여해주셨다.
그런데 이 만년형 노트커버 제작비용이 상당했던 것이다. 급하게 진행하면서 정확한 단가를 예상하지 못했다. 하드커버 제작 단가와 비교해서 대략적으로 계산만 했다. 그런데 사철제본(고급 플래너에 사용하는 실 제본)을 하면서 단가가 크게 올랐다. 그렇다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품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큰 펀딩 성과에도 불구하고, 남는것은 없었다. 물론 이런 내 생각이 초심과 다르다. 초심은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블록 플래너의 가능성을 응원해준 후원자(고객)분들께 모두 드리겠다 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되면서 금액이 늘어나자, 아이맥 한대 살 정도는 남길 수 있겠는데 라는 욕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난 백수였다.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더 큰 유혹이었다.
다행히 그 유혹을 넘길 수 있었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하는 것, 브랜드를 만드는 이유는 이번 단 한번으로 끝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시작일 뿐이다. 무엇보다 300명이 넘는 분들이 블록의 가능성을 보고 응원해 주셨다. 이것보다 더 큰 이득이 어디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실수는 실수다. 미리 정확하게 단가를 확인하고, 보다 전략적으로 행동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내 성격이라 그런지 다음에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 물론 나중에 깨달았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제출을 했다. 몇일 뒤 문제 없으니 시작해도 된다는 답장이 왔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 버튼을 눌렀다. 1분에 한번씩 들어가서 한명이라도 후원을 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역시 없었다. 스스로에게 너무 기대하지 말자, 안되도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이제 시작이니까, 말을 했다. 그래도 기대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 마음이다. 그래도 그 이후에는 확인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확인을 해보니 6명이 후원을 해주셨다. 행복했다. 6명이 아니라 60명 600명 같은 기분이었다. 후원 금액 총액은 13만원 정도 였다. 목표는 100만원. 그래도 첫날 10%는 달성 했다. 나쁘지 않다.
그런데 다음날에는 17명이 더 후원을 했주셨다. 후원 금액도 60만원이 넘었다.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기뻤다. 이정도 가지고 무슨.. 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당시 내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갑자기 이렇게 후원자가 늘어나는지 궁금했다.
텀블벅을 살펴보다 그 힌트를 찾았다. 텀블벅 메인 페이지 섹션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이 중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와 인기 추천 프로젝트에 올라간 것이다.
<텀블벅 메인 페이지 구성>
메인 배너 이미지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
공개 예정 프로젝트(당시에는 없었다)
진행중인 기획전
인기 추천 프로젝트
성공 임박 프로젝트
신규 추천 프로젝트
이 중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 와 '인기 추천 프로젝트'에 블록 플래너가 소개 됐던 것이다. 당연히 어떤 홍보 채널이 없던 상황에서 텀블벅 메인 페이지에 소개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이런 행운에 힘을 입어 후원자가 늘어났다.
3일차 : 일 후원자 23명, 누적 46명, 누적 후원금 117만원
4일차 : 일 후원자 30명, 누적 76명, 누적 후원금 190만원
5일차 : 일 후원자 36명, 누적 112명, 누적 후원금 280만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텀블벅 페이지를 들어가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 됐다. 말그대로 꿈같았다. 물론 큰 액수는 아니지만, 나에겐 억만금보다 더 가치있었다. 급하게 시작하면서 프로젝트를 13일 밖에 진행하지 못한 것이 뼈 아팠다. 조금만 미리 준비해서 한달 정도만 했으면 보수적으로도 2배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블록 플래너의 가치를 알아보는 분들이 내 예상보다 많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더욱 2개월만 쓸 수 있는 베타 버전에, 가격은 2만원이 넘고, 검정색 하드커버 1종만 있는데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아 주신다는 생각에 잠을 자지 못해도 행복했다.
이런 행운이 더해져서 50명만 후원해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최종 320명이 후원을 해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결과를 보고 이후의 가능성에 부풀었다. 2개월만 쓸 수 있는데 이렇게 예상외의 반응이라면, 제대로 시작할 2021년 1분기는 정말 더 키울 수 있겠다고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