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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이어리 연대기

by 블록군

중2병과 함께 다이어리를 쓰다.


다이어리를 처음 쓴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물론 그전에 도 일기를 쓴 것 같지만, 나에게 남은 자료 중에서 다이어리 형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것은 이것이다. 중2병이라는 말이 있듯이 난 당시에 심각한 중2병을 앓았다. 그러면서 뭔가 탈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 지 모른다. 그렇게 나름 다이어리를 썼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다이어리를 쓴다. 열심히 쓰지 않는다고 해도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기도 다이어리다. 방학 숙제로 일기를 써본 적 모두가 있지 않은가. 물론 일기를 꾸준히 써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이다. 나도 그랬다. 방학 숙제로 어쩔 수 없이 며칠 쓰다가 말았던 것 같 다. 물론 너무 오래된 기억이다. 지금은 남은 자료가 없어서, 그게 아쉽 다.


그 이후에는 다이어리를 잘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다이어리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다이어리라기보다는 스케치북 에 가깝다. 전공을 시각디자인으로 정했다. 입시 미술을 하지 않고 시 작했기 때문에 그림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했다. 학교에서 판매하는 무 지 다이어리를 구입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함께 적게 된다.


말 그대로 일기장, 스케치북이었다. 작성하는데 체계는 없었다. 솔직히 나는 체계적인 사람도 아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적이고, 좌뇌보다는 우 뇌가 발달한 사람에 가깝다. 직관적이고 즉흥적이다. 먼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가장 먼 계획은 100일정도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체계적으로 살 필요가 있 다고 느꼈다. ‘제일기획'은 회사 이름에서조차 ‘기획'이 들어간 곳이다. 기획하는 회사에, 그것도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획자에 가까운 직 군으로 입사했다. 항상 나 스스로 나에게는 이런 전략적인 능력이 부족 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 더 컸다.




내겐 너무 먼 몰스킨

학생 때는 돈이 없었다. 몰스킨을 좋아했지만, 나에게는 너무 비쌌다. 부모님도 힘든 상황에서 학비를 대주고 계셨기 때문에 사달라고 하기 도 그랬다. 그래서 문구점에서 파는 3,000원짜리 스프링 노트를 주로 썼다. 이것도 계속 쓰고 모으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스프링 노트는 책꽂이에 모으는 게 비효율적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예쁘 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기능적이지 않았다.


나는 기능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디자인은 기능을 따른다고 생각하 는 주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A4 용지를 한 묶음 구입해서 그걸 학교 에있는제도칼로절반으로잘랐다.학교앞에있는제본집에서권당 1,000원을 주고 제본했다. 그렇게 나만의 무지 노트를 제작해서 사용 했다.


그래서 입사선물로 몰스킨을 받았을 때는 정말 기뻤다. 연수 기간 강 의를 듣고, 동료들과 놀면서 즐거웠던 과정을 몰스킨에 남겼다. 그렇지 만내가남긴것들을보면그냥낙서에가까운것이많다.이것으로뭔 가를 설계하거나 계획하거나 실행하는데 활용한 적은 없다. 내 다이어 리의 기능성은 딱 그 정도였다.



프랭클린 플래너 : 플래너계의 고전

팀을 배정받고 나니 계획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신입 사원에게는 업무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틈틈이 생겼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놓쳐서도 안 된다. 다이어리를 넘어서 플래너가 필요했다. 어 떤 플래너가 있는지 찾아보니, 선배들이 많이 쓰는 브랜드가 눈에 들어 왔다. 프랭클린 플래너였다.


프랭클린 플래너는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플래너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약간 올드한 느낌도 나지만 플래너라는 영역을 개척한 브 랜드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이제 월급도 받으며 내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한 권 사면 3달은 쓰는 몰스킨을 구입하는 것도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첫 번째 플래너로 프랭클린 플래너를 선택 했다. 임원들도 쓰고, 팀장님도 쓰고, 선배들도 쓰고 있었다. 솔직히 말 하면 뭔가 있어 보였다.


프랭클린 플래너는 여러 가지 형태로 출시된다. 특히 6공 타 공형으로 모을수있는형태가인기가많다.평소에는1~3개월분량의속지를고 급스러운가죽커버에들고다닌다.다쓰고나면그속지를모으는커 버로옮긴다.1년분량을모을수있도록구성된다.그렇게프랭클린플 래너를 2010년부터 3년을 사용했다.


3년을 프랭클린 플래너를 썼다. 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억지로 쓰 는듯한느낌을받으면서도‘써야해'라는압박을하면서쓴것같다.거 의쓰지않은경우도많다.한가지그래도도움을받은것은이때부터 나는 기상, 출근, 퇴근, 취침 시간을 적는 습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것은 블록 플래너에 MY TIME이란 섹션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도 플래너를 계속 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그렇지 않으면 내 경 쟁력이 떨어진다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플래너 의 핵심 기능은 단순하다. 어떤 일을 어떻게 어떤 일정으로 할 것인가 를 계획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부가적이다.



이렇게 세세하게 써야만 할까?


그런데 프랭클린 플래너는 너무 세세했다. 세세한 것이 좋을 수는 있 다. 그런데 나는 적응이 잘 안됐다. 핵심이 요약된 1페이지 노트만 보면 되는데, 매번 논문을 봐야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왜 그럴까 하고 생각 해보면, 내 성향 때문이다.


난 정보디자인을 좋아한다. 책에 쓰듯이 정보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그 정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분석하고, 자신만의 그래픽을 만드는 것 을 좋아한다. 그래야 단순하고, 핵심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데 프랭클린 플래너는 온갖 중요한 정보를 나열만 하는데 집중하는 기 분이었다.


물론내가잘못쓰고,나와맞지않았기때문일것이다.


그렇게 3년을 써봤지만, 적응은 어려웠다. 당연히 습관으로 만들 수도 없었다. 그 이후에는 몰스킨으로 돌아갔다. 내가 선택한 것은 그냥 몰스 킨 하드커버 (무지 노트)였다. 무지 노트 안을 내 마음대로 꾸미는 것이 가장 잘 맞겠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불안함은 여전했다. 나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플래너를 잘 쓰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그냥 낙서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어떤 체계도 찾을 수 없었다. 플래너 작성 방법 같은 것을 찾아서 해보려고 해도 작심삼일이었다. 대부분 너무나도 이상적인 것 같았다. 로봇이라 면 그렇게 매일 하겠지만, 사람이 어떻게 매일 저렇게 쓸까. 어떻게 10 분, 1분 단위로 시간을 관리하고, 계획하고 살 수 있지? 솔직히 이런 의 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쓰는 사람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보면 부러웠다. 나 는 왜 이렇게 체계적으로 쓰질 못할까? 그럴수록 나의 부족함만 더욱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쓴 몰스킨을 보면 솔직히 체계적이진 못 하다. 물론 나는 아이데이션을 좋아한다.


몰스킨이 추구하는 창의성이란 컨셉을 좋아한다. 그래서 몰스킨을 쓴 다. 그래도 업무를 계획하고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계획 하고, 플래너를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는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조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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