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내려가는 기차 안, 차창 밖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서울에서 누나의 퉁퉁 부은 다리를 보고 내려오는 길이라 그런지,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호강시켜 줄게" 라고 큰소리쳤지만, 사실 나는 안다. 나는 누군가를 호강시켜 주기는커녕, 늘 누군가의 속을 썩이는 존재였다는 것을.
이어폰을 꽂고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 문득, 2년 전 그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유난히 춥던 겨울, 경찰서 형사계의 딱딱한 철제 의자. 싸움에 휘말려 조사를 받고 있던 내 앞에는, 나보다 더 작아진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죄송합니다. 제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습니다. 한 번만 선처해 주십시오."
평소엔 그렇게 엄하고 무섭던 아버지가, 새파랗게 젊은 형사 앞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있었다. 형사의 훈계에 연신 "네, 네, 알겠습니다" 하며 고개를 조아리던 아버지의 뒷모습. 그때 보았던 아버지의 어깨가, 그 등이 너무나 좁고 초라해 보여서...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울음을 삼켰었다.
경찰서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길, 아버지는 나를 때리지 않으셨다. 대신 동네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소주 한 병을 병째로 비우셨다.
"......"
긴 한숨 소리가 찬 바람에 흩어졌다. 그 침묵이 매질보다 더 아팠다. 학교에서 쫓겨날 뻔했을 때도, 사고를 쳐서 합의금이 필요했을 때도, 아버지는 늘 말없이 내 짐을 대신 짊어지셨다.
나는 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늘 '짐'만 되는 걸까.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누나에게도 나는 짐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돈 없는 연하 남자친구가, 그녀의 어깨를 더 무겁게 누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기차 안에서 나는 가방 구석에 박혀 있던 연기 연습 노트를 꺼냈다. 평소엔 대사 분석이나 캐릭터 연구를 끄적이던 노트였지만, 오늘만큼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는 마치 무대 위에서 아버지에게 고해성사를 하듯, 떨리는 손으로 독백(Monologue)을 적어 내려갔다.
'경찰서 차가운 의자에 앉아 고개 숙인 당신을 훔쳐보던 날...'
'내 잘못을 대신 빌던 아버지의 떨리던 좁은 어깨를 기억합니다...'
독백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눈앞이 뿌예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못난 과거를 잊지 않고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 그리고 이 대사(Lines)처럼,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고개 숙이게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뿐이었다.
누나, 그리고 아버지. 두 사람의 뒷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더 이상 내 사람들의 어깨가 나 때문에 처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차가 광주역에 도착할 무렵, 나는 눈물을 닦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이 글은 훗날 나의 노래가 되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짜 남자가 되겠다는 피 끓는 선언문이었다.
작가후기
사실 과거를 생각하며 쓴글이지만 소설입니다.
가사를 쓴걸 보고 이런 감정도 괜찮겠다 싶어서 만든 장면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진심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