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빈 지갑을 채울 방법, 대학 가요제

by 홀로서기

1997년 3월. 개강과 함께 캠퍼스에는 다시 활기가 돌았다. 신입생인 97학번 새내기들의 풋풋한 웃음소리가 교정을 채웠고, 동아리방 앞에서는 호객 행위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연애 중인 가난한 2학년'인 나의 3월은 마냥 낭만적이지 않았다. 지난달 밸런타인데이에 누나가 사준 고급 가죽 지갑. 볼 때마다 흐뭇하고 고마웠지만, 정작 그 속은 천 원짜리 몇 장과 식권이 전부였다.


'지갑은 명품인데, 내용물은 빈민가네.'


점심시간, 학생회관 식당에서 1,500원짜리 백반을 먹으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누나 말대로 "돈 많이 채워서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큰소리쳤는데, 현실은 시외버스 차비 모으기도 빠듯했다. 아르바이트를 더 늘려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제15회 용봉 가요제 개최] - 대상 상금: 50만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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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만 원?!"


밥 먹던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당시 50만 원이면 한 학기 용돈에 버금가는 거금이요, 누나에게 근사한 호텔 뷔페를 쏘고도 남을 돈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연극영화과 전공을 살려 무대 공포증은 없었고, 노래는... 뭐, 나름 자신 있었다. 지난번 믹스테이프를 듣고 울던 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내 목소리가 아주 안 먹히는 건 아니다.'


그날부터 나는 연습실 귀신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소극장에 틀어박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선곡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토이(Toy)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감미로우면서도 폭발적인 고음이 필요한 난이도 최상의 곡이었다.

예선 전날 밤, 공중전화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나 이번 주말에 서울 못 가."

"왜? 과제 많아? 바쁘면 억지로 안 와도 돼."

"아니, 나 대회 나가. 상금 타서 누나 지갑 빵빵하게 채워주러 갈 거야."


그녀는 수화기 너머로 깔깔 웃었다.


"야, 김호준. 꿈도 야무지다. 참가상으로 치약이나 받아오지 마라."

"두고 봐. 내가 1등 해서 트로피 들고 갈 거니까."


드디어 예선 당일. 학생회관 강당은 참가자들로 북새통이었다. 통기타를 멘 록 밴드부터, 핑클 춤을 추는 여학생들까지. 잔뜩 긴장한 채 내 순서를 기다리는데, 앞 순서 참가자가 삑사리(음이탈)를 내자 관객들이 야유를 보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음, 참가번호 27번 김호준 학우!"


사회자의 호명에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눈부신 조명이 쏟아졌다. 객석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누나 생각하자. 50만 원. 호텔 뷔페. 빨간 목도리.'


반주가 시작되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녀가 있는 서울의 밤하늘을 떠올리며 첫 소절을 뱉었다. 그 순간, 시끄럽던 강당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1997년의 봄. 내 가난한 청춘의 노래가 캠퍼스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작가후기

현실인 저는 음치 입니다만......

이녀석......부럽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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